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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Sep 10. 2023

사람의 쓸모

 신고자와 전화연락 하면서 진행하세요.


 지령은 그걸로 끝이었다. 어떤 내용의 출동인지 알 수 없었다. 신고자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곡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몇 번을 되물은 끝에 여자가 S 아파트 4층에 살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지어진 지 30년도 더 된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였다. 한 층에 열 세대가 넘는 사람들이 사는데 엘리베이터는 중앙에 단 하나 있었다. 그마저도 좁아서 주들것(바퀴가 달린 들것. 의자형태로 변환이 가능하다.)을 집어넣으니 사람 탈 공간이 모자랐다. 어찌어찌 몸을 구겨 넣어 엘리베이터에 탔다. 신고자가 사는 집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복도를 따라 길게 늘어지는 울음을 쫓아갔다. 그 끝에 울음이 샘처럼 솟는 집이 있었다. 문을 두드렸다. 삐리릭. 도어록이 해제되며 문이 열렸다. 벌거벗은 여자가 그 안에서 나왔다.


 여자는 40대 후반이었다. 위로 올려 묶은 머리가 어수선하게 삐져나와 있었고 하도 울어서 눈이 개구리처럼 튀어나왔다. 여자의 왼팔에 식칼로 여러 번 그어 놓은 자국이 보였다. 옷을 입히고 상처를 처치하는 동안 울음이 조금 잦아들었다. 이게 뭐예요, 왜 그랬어요. 나처럼 쓸모없는 사람은 죽어야 돼요. 잠시 뒤 여자의 엄마가 나타났다. 노모는 가만히 서 있는데도 조절이 안 되는 양 끊임없이 고개를 도리질했다. 화가 난 것도, 우는 것도 같은 표정으로 딸에게 소리쳤다. 이럴 거면 그냥 죽어 이년아. 딸은 완전히 풀이 죽어 화장실로 달려가서 다시 울었다. 여자는 손발을 휘두르며 주변 집기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때마침 경찰이 도착했다. 누군가 소리쳤다. 도와주러 온 거잖아! 야! 가만히 있어! 그러자 여자는 더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유리컵이 날아가 벽에 부딪치면서 박살이 났다. 여자에게 다가가 양 팔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두어 번 등을 두드렸다. 여자가 무너지듯 안기며 말했다. 병원에 데려가 주세요.


 여자가 진정될 때까지 잠시 그녀의 방에 들어가 있었다. 받침대도 없는 작은 캔버스에 연필로 자화상을 그려 놓은 게 눈에 띄었다. 아래위 두 칸짜리 책장에는 누렇게 빛이 바랜 소설책이 빼곡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도 거기 있었다.

 나는 똑똑한 사람이에요.

 알아요.

 나는 예쁜 사람이에요.

 그것도 알아요.

 병원에 인형 가져가도 돼요?

 그럼요.

 여자가 티브이 옆에 놓인 얼굴이 아기 주먹만 한 인형을 집었다. 인형 팔과 몸통 사이에 알사탕과 오천 원 짜리 지폐가 끼워져 있었다. 함께 출동한 구급대원이 그걸 꺼내주려 했다. 그거 걔한테 준 거야, 그냥 둬. 그쵸? 여자에게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시내 대학병원에 응급입원을 하기로 했다. 병원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여자는 니트릴 장갑을 낀 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파란 손이 참 좋다.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응급실의 공기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는지 집에 돌아가겠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간호사들과 보안요원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물지 못하도록 한 사람이 머리를 잡고, 나머지 사람들은 팔다리를 무릎으로 눌렀다. 잠시 뒤, 여자는 병원 침대에 손발이 결박된 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후로 말을 걸 용기가 없어 여자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쓸모없는 사람이란 생각 때문에 더 이상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꽃이 쓸모를 위해 피는 것이 아니듯 애초에 사람도 쓸모를 위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으며, 때때로 울고 웃는 것으로 삶의 이유는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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