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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Sep 13. 2023

아빠 왔다

 요양원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출동하면서 환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네, 산소포화도도 조금 떨어지고요. 병원에 좀 가셔야 할 것 같아요.

 단순 이송이면 요양원 차량으로 모시고 가도 되지 않나요.

 다른 구급대원분들은 그냥 이송해 주셨는데.

 알겠습니다. 출발할 준비 좀 미리 부탁드려요.


 입씨름하기 피곤했다. 시내에 구급차가 없어 상황실에서 발을 동동 굴러도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소방관 외에 없단 걸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그냥 갔다. 이런 출동을 나갈 때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기 때문에 표정 관리를 하면서 가야 했다. 요양원은 으레 그러려니 해야 하는데 곱씹을수록 화가 났다. 입소한 노인들을 병원에 데려다주기도 귀찮아하면서 평소에는 제대로 모시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원에 도착했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멀끔했다. 요양보호사 한 사람이 나와서 환자가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90세를 넘긴 할머니였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외쳤다. 아빠 왔다! 들것을 할머니의 몸 아래 밀어 넣고 이송할 준비를 했다. 하나, 둘, 셋 신호에 맞추어 들어 올리는데 할머니가 아야야야! 소리치며 길게 자란 손톱으로 내 얼굴을 할퀴었다. 안경이 벗겨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에이, 때리면 안 되지. 나무라듯 말하자 금세 잠잠해졌다. 치매가 온 노인들을 대할 때는 나도 모르게 반말이 나온다. 어쩐지 어린애를 대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노인이 머물던 방을 나오려는데 식사 보조용 의자에 앉아 있던 다른 노인이 내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길게 늘어지는 소리가 꼭 메아리 같았다.


 선생님! 나도 데리고 가요!


 퇴근하는 길에 통닭집에 들렀다. 이제 한 마리로는 모자라서 반 마리를 더했다. 애들 좋아하는 카사바칩도 추가했다. 통닭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차에 탔다. 더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서 보조석 창문을 뿌옇게 만들었다. 식을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동안도 봉투 손잡이를 쥔 손등이 뜨끈했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문 안쪽에서 벌써 발 굴러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었다. 두 딸이 해 같은 얼굴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왔다!

 아빠 왔다!

 고생 많으셨어요. 이건 저한테 주세요. 짐짓 통닭 때문에 아빠 팔이 무겁겠구나 염려하는 척하며 첫째가 통닭 봉투를 채 갔다. 부엌에 있던 아내가 슬그머니 나와서 그 꼴을 우스운 양 쳐다봤다.

 수고했어.

 당신도.

 

 웃음이 나왔다. 웃음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갑자기 돈을 많이 번 것도, 큰 명성을 얻은 것도 아니었다. 아빠가 집에 온 것 만으로 행복해하는 사람들 덕에 나도 행복해서 웃었다. 어쩌면 요양원에서 만난 할머니도 반가운 마음에 아빠 왔다! 하고 외쳤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기서도 지금처럼 웃지 못한 게 조금 후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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