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Sep 08. 2023

20년 만에 선생님께 칭찬받았다

 고 3 때 담임선생님은 나를 또라이라고 불렀다. 애칭이라고 하기엔 절반쯤 질타성의 호칭이었다. 야자 빼먹고 몰래 술을 마시러 나가거나, 야자 빼먹고 몰래 노래방에 가거나, 야자 빼먹고 몰래 잠긴 음악실 창문을 열고 들어가서 피아노를 치거나. 적어놓고 보니 내가 잘못한 건 겨우 야자 시간을 빼먹은(낮엔 얌전하게 공부하고)  것뿐인데 여하튼 또라이라고 불렀다. 감사한 건 학년에 몇 없는 별종 중 하나를 맡아서 가르치는 중에 진심으로 화를 낸 적이 한 차례도 없다는 사실이다. 가끔 당구큐대로 종아리를 풀 스윙으로 갈기긴 했지만 악의는 없어 보였다. 나라면 그 정도에서 안 끝냈을 것 같다.


 소방서 동생이 결혼을 해서 아내와 함께 예식장을 찾았다. 말 그대로 엄청 비까 번쩍했다. 동료들이 축가를 불러주었고, 입심이 좋은 친구가 사회를 보았다. 주례는 없었다. 사위가 처가 식구들을 포옹하고, 며느리가 시댁 식구들의 포옹을 받았다. 수 백명의 소방서 동료들과 친구들이 행진하는 커플에게 식장이 떠나가라 박수를 보냈다. 결혼식은 폭죽이 터지듯 끝났다. 옆을 보니 아내가 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우리 결혼식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어드는 건지, 제 결혼생활을 떠올리며 회한이 밀려드는 건지 여하튼 결혼식 데려올 때마다 저렇게 울었다. 좋은 마음으로 울었으면 하지만 내 마음이 아니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냥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사도 아주 잘 나왔다. 우리 결혼식 때는 교회에 출장뷔페를 불렀는데, 아내와 내가 손님들께 인사를 마치는 즈음 해선 음식이 바닥났다. 제 결혼식 때 제대로 밥을 못 먹인 게 아내에게 아직까지 미안한 마음으로 남았다. 아내도 그때 한이 맺힌 건지 예식장 오면 밥을 잘 먹는다. 한식, 중식, 양식, 즉석코너, 초밥 코너 하나하나 들러서 음식을 잔뜩 떠서 먹다 먹다 못 먹겠다 싶으면 나를 준다. 아내가 또 한 접시 뜨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아내의 빈자리 건너편 테이블에 익숙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조금 벗어지고 주름이 많아졌지만, 장난기 가득한 웃음과 총명해 보이는 눈빛은 그대로였다. 화내지 않고 늘 웃는 얼굴로 내 종아리를 때렸던 그 사람. 모르긴 해도 나 때문에 한 오 년은 수명이 짧아졌을 고 3 담임 선생님이 거기 있었다. 선생님 쪽으로 다가갔다. 뭐라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잘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불렀다. 선생님. 그러자 내 얼굴을 본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입을 뗐다.

 

 또라...... 너 이름이 뭐였더라.

 OOO이에요, 선생님.


 나를 만난 뒤에 또 얼마나 많은 또라이들을 만났을까. 그 세월을 생각하자 선생님이 내 이름을 기억 못 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도 내가 학창 시절에 얼마나 개판이었나 정도는 기억하고 계신 듯했다. 한참을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듯하던 선생님이 겨우 한마디 했다.


 그래서, 요즘 뭐 하니.


 이 자식이 어디 가서 사람 구실은 제대로 하고 사는가. 제 손으로 밥 빌어먹을 양심은 이제 좀 생겼나. 등등등의 의문이 복잡하게 얽힌 말이었다. 때마침 아내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실컷 먹고 나니 이제 신랑이 어딨나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아내의 손을 쥐고 선생님께 말했다. 저 소방서에서 일해요. 이쪽은 와이프예요. 그러자, 선생님이 갑자기 밝아진 얼굴로 탄성을 지르듯 말했다.


 너 정말 멋있어졌다!


 그 말이 꼭 ‘와 정말 다행이다’처럼 들렸던 건 내 착각일까.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던 건 선생님이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른다. 철딱서니 없던 시절의 모습 그대로 선생님을 만났다면 조금 창피한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다행히 지금은 내 밥벌이도 하고, 부족한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도 있다. 그래서 처음 식당에서 선생님을 발견했을 때 인사를 하고 싶단 생각을 한 것 같다. 선생님께 연락처를 알려드리고, 교감으로 계신 학교로 꼭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살면서 어떤 선생님께도 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너 정말 멋있어졌다!


 두 번 쓰고 싶을 만큼 그 말이 기분 좋았다. 20년 만에 처음 들은 칭찬이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이거 하나면 셀럽이 될 수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