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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Sep 06. 2023

이거 하나면 셀럽이 될 수 있어

 비싼 카페에 앉아 글을 끼적인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오천 원이면 비싼 거다. 자판 위에서 손가락을 바쁘게 놀리는 동안 노트북 화면 너머로 수많은 시선이 느껴진다. 요번에 9만 원이나 주고 산 뿔테 안경 덕에 더 잘생겨 보이는 탓인가. 생각해 보니 며칠 운동을 바짝 하긴 했지, 펌핑이 돼서 그런가. 아, 맞은편에 앉은 저 여자들은 너무 대놓고 쳐다보는데. 난감하구먼. 결혼했다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닐 수도 없고. 직접 다가와 말을 걸진 못하고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이야기하는 게 귀엽기까지 하다. 다 들리는데, 저럴 거면 그냥 대놓고 말을 했으면 좋겠다.

 얘얘, 저 남자 좀 봐.

 나 실물은 처음 봐.

 먹태깡이야, 먹태깡.

 진짜 먹태깡이네.

 뜯지도 않고 테이블에 올려만 놨어.

 그러게. 대체 왜 저럴까.

 마땅히 둘 데가 없어서 꺼내 놓은 건데, 만약 이게 먹태깡이 아니라 새우깡이라면 지금처럼 질투 어린 시선을 받을까.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심리도 비슷하리란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에겐 부러움으로, 어떤 이들에겐 시샘으로 다가오는 물건을 소유할 때의 기분. 평생 느껴본 일 없는 그 기분을 먹태깡 덕에 간접 경험하는 중이다. 썩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셀럽의 삶이 이런 걸까. 이게 다 조금 전에 들른 편의점 사장님 덕이다.


 없어. 어쩌면 원래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몰라.


 과자 매대를 둘러보며 속으로 뇌었다. 슬슬 유행이 지날 때도 됐는데 그놈의 먹태깡은 눈 씻고 찾아도 없었다. 부러 동네에 있는 편의점을 전부 돌아가며 방문을 하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허탕이구나. 그냥 물이나 한 병 사서 나와야지 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카운터에 앉아 있던 편의점 사장님께 카드를 건네며 넌지시 물었다.

 사장님, 먹태깡은 대체 어디에 있나요.

 먹태깡이요?

 네. 먹태깡이요.

 아아.

 잠시 고민하던 사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이 앉아계시던 의자는 작은 드럼통처럼 생긴 물건으로 위쪽에 쿠션을 겸하는 뚜껑이 있고, 아래쪽은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사장님이 의자 뚜껑을 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먹태깡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번 절하다시피 인사를 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먹태깡 샀어!

 잘했어! 어디서 구했어?

 사장님 엉덩이 밑에 있었어.


 저녁식사로 아내는 고기가, 아이들은 파스타가 먹고 싶단다. 냄비 하나는 삼겹살로 동파육을 만들고, 다른 팬 하나는 양파와 마늘을 직접 볶아 토마토소스를 만든다. 밥을 실컷 먹여놓으면 과자를 안 찾을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다들 먹태깡부터 찾는다. 내가 이걸 어떻게 구한 건데. 한 달은 편의점 순례를 하면서 겨우 한 봉지 구한 건데. 구시렁거리며 작은 종지에 마요네즈 조금, 간장 한 숟갈 얹어 찍어먹을 소스를 만든다. 과자 봉지를 뜯기 전에 잠깐 멈칫한다. 이걸 뜯으면 더 이상 셀럽이 될 수 없다. 고민하는 사이 첫째가 거침없이 과자 봉지를 반으로 갈라 버린다. 안 돼! 청양고추의 알싸한 향과 함께 먹태의 구수한 향이 퍼지기 무섭게 여덟 개의 손이 먹태깡을 향해 쇄도한다. 맛있다. 이래서 편의점 사장님이 엉덩이 밑에 감춰두었구나 생각이 들 만큼 맛있다.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먹는 식구들을 보고 있자니 먹태깡을 구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셀럽이 되진 못하겠지만 잘 먹는 모습을 본 것으로 만족한다. 혹 내 손에 먹태깡이 아니라 샤넬 백이 쥐어져도, 먼 훗날 그보다 더 큰 뭔가가 쥐어져도 내 식구들 배 불리는 일이 내겐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살면 내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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