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Sep 01. 2023

칭찬은 고기도 춤추게 한다

 아버지 얘길 잘 안 했는데, 사실 우리 아버지는 무척 다정한 사람이다. 나 어렸을 때만 해도 대놓고 남자가 귀하던 시절이라 아버지가 다정한 사람이란 생각을 못했다. 표현을 잘 안 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다정함이 드러났는데, 그 시절의 남자들은 좀 못됐다. 밥 다 먹으면 소파에 드러누워 티브이 리모컨부터 찾았고, 아내에게 다정한 말마디 건네는 걸 자존심 상하는 일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아버지도 비슷했다.


 아버지의 다정함이 세상 밖으로 드러난 건 순전히 엄마 덕이다. 엄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따뜻한 사람이다. 오히려 더 따뜻해졌으면 따뜻해졌지, 모진 세월이 엄마를 모진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 덕에 아버지도 나이 50을 넘기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엄마에게 낯간지러운 애정 표현도 종종 하고, 집안일도 절반은 자기가 한다. 아버지한테는 쌍둥이 형제가 한 분 있는데 어렸을 때는 정말 똑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아예 다른 사람이다. 큰아버지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울 아버지 인상이 훨씬 좋다. 시간이 지문처럼 얼굴에 다른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다정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를 꼽자면 단연 손녀들을 대할 때다. 난 애들 보려고 너희들 놀러 오라 하는 거야. 말 안 해도 아는데 꼭 그렇게 덧붙인다. 손녀들을 위해서라면 땡볕 아래 혼자 마당에 벽돌을 깔아 수영장을 만들고, 딸기 밭을 일구고, 심지어 요리도 한다. 정말이다. 평생 주방 근처도 안 가던 사람이 요리를 한다. 메뉴가 단 하나뿐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일단 그 맛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할아버지, 저 바베큐 먹고 싶어요.


 그 한마디면 끝이다. 시골집 가기 전날 전화로 주문만 하면 아버지의 요리가 시작된다. 숯을 피워 너무 활활 타오르지 않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 바베큐 그릴 안쪽에 숯을 넣고, 그 위에 시즈닝으로 양념한 덩어리 삼겹살을 놓는다. 이제 뚜껑을 닫고 기다리기만 하면 끝인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바베큐 그릴 안쪽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문제고, 고기가 딱 알맞게 익는 시간에 맞추어 꺼내는 것도 일이다. 뚜껑 안쪽을 들여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더 어렵다. 불조절을 잘못하거나 시간을 잘못 가늠하면 바짝 마른 고기, 아니면 설 익은 고기가 된다. 아버지는 수년간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겼다. 그 지난한 노력이 누구를 위해서였는지 말해 뭐 할까.


 할아버지, 고기가 너어무 맛있어요.

 그래? 많이 먹어라.

 아버지, 오늘 더 맛있는 거 같은데요.

 이제 니가 배워서 좀 해라.


 힘닿는 때까지 만들 거면서 꼭 저런 소릴 한다. 아버지는 우리 식구들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껴뒀던 술을 꺼낸다. 코스트코에서 사 온 25도짜리 증류소주다. 요샌 나도 그런 식으로만 한 잔씩 한다. 아버지는 고기는 많이 먹지 않는다. 몇 점 집어 먹다가 맛나게 먹는 식구들 얼굴을 안주삼아 한 잔, 또 한 잔 기울인다.


 아버지한테 바베큐 만드는 걸 배워둬야겠다. 그래서 아버지 안 계신 날에 푸드트럭에 바베큐 그릴을 싣고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싶다. 와이프가 같이 가 줄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걸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건 아니고, 하루에 한 열 명 정도에게만 이 맛을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울 아버지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이었나 자랑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넷으로는 살 수 없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