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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ug 30. 2023

인터넷으로는 살 수 없는 것

 외삼촌들이 여럿 있다. 다들 울 엄마만큼이나 독특해서 카메라로 담으면 영화가, 글로 쓰면 소설이 한 편씩 나올 것이다. 정확히는 오촌까지 포함이지만 21세기에 그런 건 따지지 않기로 한다. 다 삼촌이라 부른다. 여하튼 그 삼촌들 중엔 서울대 5수 끝에 페인트 도매업하는 삼촌, 해외 유학파 자동차 정비 공장 사장 삼촌, 두바이에 cctv 팔아서 발렌타인 25년 산으로 하이볼 만들어 마시는 삼촌 등등이 있다. 요번에 우리 집에 놀러 온 삼촌은 아날로그광 PD삼촌이다. 삼촌은 모 방송사의 편집국장인데 이제 퇴직이 1년 남았다. 마지막 한 해는 공로연수로 보내기 때문에 요즘은 해변을 돌아다니며 예쁜 조개껍질을 주워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으로 소일한다. 지난 주말에는 뜬금없이 견지낚시를 가자고 찾아왔다. 인터넷으로 클릭 한 번이면 잡고기도 아이스박스에 담겨 배달이 오는 세상에 굳이 계곡에서 낚시를 해야 하나 싶었다.


 출발 당일, 삼촌은 커피를 다 마시고 재떨이로 쓰던 보틀을 씻어서 거기다 믹스커피를 타 왔다. 커피에서 담배맛이 난다 야. 말하며 차 타고 낚시터까지 가는 내내 그걸 홀짝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분명 깨끗이 씻었는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견지 낚싯대는 겨우 사람 팔 길이만 대 끝에 나선으로 휘는 모양의 섭대(낚싯줄 감는 부분)가 달린 단순한 구조다. 내내 수동으로 줄을 감고 풀어야 하기 때문에 손잡이 부분은 천이나 고무 등으로 마감한다. 예민한 물건이 아니라서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에게도 하나씩 낚싯대가 주어졌다. 첫째는 계곡 중간에 솟은 바위에 걸터앉아 낚싯줄을 풀고 되는대로 팔을 휘저었다. 저래서 고기가 잡히겠나 싶었는데 심심찮게 눈먼 고기가 바늘에 딸려 올라왔다. 아이가 첫 물고기를 잡았을 때 내게 물었다.

 아빠, 몇 마리나 잡았어?

 아직. 0 마리야.

 흐음.


 세 마리가 되었을 때 또 물었다.

 이제 잡았어?

 아니. 아직 0 마리야.


 다섯 마리째.

 아빠.

 0 마리야. 물어보지 마.


 이쯤 되자 아이가 제 몫의 물고기를 잡는 게 기특하게 느껴지진 않고 약만 올랐다. 내내 서 있으려니 허리도 아파서 물가에 나가 좀 쉬기로 했다. 그러다 자빠져서 머리까지 다 젖었다. 낚시는 뒷전이고 물이 잔잔한 곳에서 송사리를 잡던 둘째가 그걸 보고 깔깔댔다. 휴대용 버너에 물을 끓여 컵라면에 부었다. 화난 것처럼 라면을 뱃속으로 밀어 넣고 나니 분이 좀 가셨다.


 2차전부터는 수확이 있었다. 삼촌이 말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물고기들이 바늘을 물었다. 심심하게 생긴 피라미, 힘 좋아 보이는 꺽지, 뾰족한 주둥이가 예쁜 메자(참마자)까지 올라왔다. 신이 났다.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털구름이 하얀 이불처럼 하늘을 덮고 있었고, 강 건너 야트막한 동산엔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풀과 나무가 짙은 초록으로 빛났다. 바위 위에 앉아 아빠에게 몇 마리 잡았냐고 묻는 소녀도 더 이상 얄밉지 않았다. 평소처럼 예뻤다.


 오전 11시에 시작한 낚시는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잡아온 물고기로 엄마가 매운탕을 끓여 주셨다. 아버지는 이틀 연속으로 술을 마시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다며 삼촌과 소주 두 병을 깐 뒤에 한 병을 더 깠다. 나는 다음 날 근무라 술 없이 매운탕만 먹었다. 깔끔하고 진한 맛이 났다. 분명 매운탕보다 매운 무언가가 이 한 그릇에 가득 들어가 있었다. 그건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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