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태명은 바다였다. 연애한 지 두 달도 못 되어 엄마 뱃속에 자리 잡은 아이였다. 당시의 여자친구이자 지금의 아내를 바다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 애칭이 익숙해질 즈음 부모님 댁에 아내를 데리고 왔다. 무작정 결혼을 시켜달라고 했다. 눈치 빠른 아버지가 그러마 하고 말씀해주신 덕에 아내가 덜 무안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우리가 떠난 뒤 아버지로부터 대강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내 어머니는 그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처제네 식구와 바다로 여행을 왔다. 가을이라 물이 차가운데 아이들은 일단 신발 양말 다 벗어던지고 발부터 물에 담그고 본다. 애들 옷을 다 적셔서 숙소에 들어오니 그러다 감기 걸린다며 처제가 핀잔을 주었다.
남자들은 밖에서 고기를 굽고 여자들이 애들과 함께 방 안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실 고기 굽는 건 핑계고, 술 마시는 페이스가 비슷한 제부와 오랜만에 눈치 안 보고 술판을 벌이려는 속셈이었다. 한 시간 만에 소주 여섯 병이 동이 났다. 아내가 애들 밥을 대강 먹이고 술자리에 합류했다. 처제는 아들내미가 아직 어려서(더해서 감기 기운까지 있었다) 숙소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처제네 아들이 밤새 숙소의 전등 스위치들을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네 시쯤인가 제 엄마 배 위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어른들도 쓰러졌다. 우리 두 딸은 불이 켜지던 꺼지던 세상 편안히 아침까지 잤다. 그리고 일어나기가 무섭게 바다로 달려 나가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다. 실컷 놀던 둘째는 엉덩이를 까고 오줌을 한바탕 누었다.
말없이 바다를 보는 첫째가 어쩐지 낯설었다. 제 또래 애들보다 한 뼘은 큰 키에 말씨도 진중함이 묻어나서 어린애란 생각을 못하곤 하는데, 오늘따라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바다에 데려올 때면 늘 첫째는 무언가 가슴을 어루만지기라도 하는 양 편안하면서도 어딘지 시큰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는 내 얼굴도 아마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리라.
부족한 아버지라서 아이들을 자꾸 바다에 데려오고 싶은 것 같다. 내가 백 마디 말로도 가르치지 못하는 걸 바다는 그 자체로 보여주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올해도 바다로부터 한 수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