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김장

by 백경

"할머니, 너무 불쌍하게 돌아가셨어......"


재작년 늦은 겨울이었다. 눈이 한참 내리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죽음이 불쌍하다 말했지만 어쩐지 나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허리가 굽어 반으로 접히기 직전까지 만두를 빚어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던 외할머니였다. 출동한 119 구급대와 경찰이 보기엔 흔한 자살이었겠지만, 내가 아는 외할머니의 성정을 감안한다면 분명 그것은 선택이었다. 우울에서 출발하여 떠밀리듯 맞이한 죽음이 아닌, 당당하고도 초연한 죽음. 번개탄을 피운 뒤 한 일자로 곱게 누워 잠든 할머니의 얼굴은 더없이 결연했다. '충분히 살았으니 이만 떠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외할머니 없이 김장을 했다. 아내와 엄마가 함께 쪽파를 다듬는 걸 보고 있자니 아내는 영락없는 젊은 시절의 우리 엄마를 닮았고, 엄마는 외할머니의 현신 같았다. 사이좋게 굽어가는 고부의 뒷모습에 어쩐지 마음속 깊이 죄책감이 느껴졌다.


엄마는 미처 어른이 될 준비도 하기 전에 억지로 어른이 된 것 같아 서글프다 말했다. 60 평생 이어진 김장이라면 눈 감고도 할 법 한데, 외할머니의 부재가 엄마를 한 순간에 미성년으로 뒷걸음질 치게 만든 양으로 엄마는 김장하는 내내 두서가 없었다. 덕분에 예전 같으면 한나절이면 끝낼 일을 이틀에 나누어했다.


이걸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할까, 아마도 올해가 최후의 김장이노라 주문처럼 되뇌지만 이놈의 김장은 내가 대학 가고 장가가고 애가 둘이 될 때까지 맥을 이어간다.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일 년에 한 번 모습을 드러내는 여기 옛 문명의 잔재가 마음 같아선 언제까지고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트에서 돈 주고 사 먹는 김치가 더 맛나다고 느껴지는 요즘인데, 그래도 외할머니의 맛이, 엄마의 맛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다고 생각하면 조금 안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도 말뿐인 최후의 김장을 한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을 돼지고기 수육과 겉절이 김치의 콜라보를 갈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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