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데드리프트

by 백경

리프트에 앞서 짧게 숨을 내쉰다. 긴 한숨은 장요근과 척추기립근의 긴장을 흩어버리기 때문에 금물이다. 손바닥과 엄지 손가락 안쪽에 적당히 탄마를 바른다. 엄지를 먼저 바벨에 붙이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엄지와 바벨을 동시에 그러쥔다. 허리가 굽지 않도록 광배근의 긴장을 유지하고, 폭발적으로 지면을 박차는 느낌으로 시작한다. 일단 바가 무릎까지만 올라오면 순조롭다. 이후엔 엉덩이 사이에 쇠공을 하나 끼워 넣고 그걸 동전처럼 얇게 저며버린다는 각오로 들어 올린다.


말해 무엇하랴.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데드리프트다. 처진 엉덩이를 걷어차 올려붙이기에 이만한 운동이 없고, 나이 먹을수록 심각해지는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을 해결하기에도 그만이다. 몸무게의 두 배쯤 되는 중량을 들어 올릴 때면, 테스토스테론과 아드레날린이 전신을 휘감는 기분을 느낀다. 데드리프트를 꾸준히 하는 사람 중에 남성성을 상실하는 사람은 없다. 고로 섹스리스의 근원적인 해결책은 데드리프트임이 분명하다.


데드리프트는 본래 혹자들이 이야기하듯 죽음의 들어 올리기(deadly lift)가 아닌, 영점에서 시작하는 들어 올리기(lift from dead)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거치대나 슬링을 이용하여 바닥에서 얼마간 띄워 두고 하는 데드리프트는 본질을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지를 딛고 선 내 두발과 정확히 같은 높이에서 시작해야 하며, 웅크렸던 육체를 일으켜 세우는 동시에 가슴을 펴고 엉덩이를 조여 나와 지면을 온전한 수직선상에 놓이도록 해야 비로소 데드리프트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정신적인 요소가 리프트의 성패에 미치는 영향력은 자명하다. 실제로는 100kg인 중량을 머릿속으로 90kg라고 믿는 임전무퇴의 신념, 오늘 이 리프트를 성공해야 귀가해서도 후회가 없으리란 각오, 나는 살면서 지금 이 순간까지 진정으로 최선을 다한 적이 없노라 스스로를 깨치는 독려 등등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그리고 이들 정신적인 요소는 '용기'라는 한 단어로 요약이 된다. 용기야말로 성공적인 리프트를 견인하는 선봉장인 것이다.


요즘 나는 자꾸 용기를 잃어버린다. 자명한 불의를 우습게 여기는 공기, 혹은 그것에 대하여 입을 떼서는 안 된다는 공직사회의 암묵적인 합의의 분위기가 숨통을 조인다. 저항과 의문이란 단어에 다수의 언론들이 붉은 칠을 해대며 희생자들을 욕보이지 말라고, 너만 가만히 있으면 잘 수습될 거라고 가르치려 든다. 어쩌면 그들의 날 선 질책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손발의 힘이 빠져나간다. 잘 살 수 있다는 용기도 함께 빠져나간다.


대한민국 국민인 나는 스스로 '영점'에 도달해 있음을 느낀다. 거치대도, 지렛대도 없이 오로지 내 몸뚱이 하나로 삶을 바닥으로부터 끌어올려야 하는 그 지점 말이다. 나는 태산 같은 우울을 들어 올리기에 앞서 짧게 숨을 내쉰다. 허리가 굽지 않도록 광배근의 긴장을 유지하고, 폭발적으로 지면을 박차는 느낌으로 시작한다. 일단 우울이 무릎까지만 올라오면 순조롭다. 이후엔 엉덩이 사이에 우울을 끼워 넣고 동전처럼 얇게 저며버린다는 각오로 들어 올린다.


우리는 때때로 데드리프트 해야 한다. 엉덩이와 인간성의 상실을 막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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