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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Sep 27. 2023

목표가 없어야 살이 빠진다

 이건 와이프한테 비밀인데, 오늘 아침 비가 올 때 러닝을 다녀왔다.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뛰러 나간 건 아니고 뛸 준비를 다 하고 밖에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는 보통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운동은 포기하고 하루 집에서 쉰다. 둘째, 우산이나 우의를 챙겨서 러닝 대신 산책이라도 한다. 셋째, 나처럼 그냥 달린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가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몸은 비가 오든 말든 뛰고 싶은지 슬슬 발동이 걸렸다. 그래서 안개처럼 흩뿌리는 비 사이로 그냥 달렸다.


 나는 일단 뭐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린다. 예전에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매일 아침 공복에 10킬로씩 달렸고, 주 3회 피티를 받았고, 내가 닭인가 닭이 나인가 싶을 만큼 닭가슴살과 달걀을 뱃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서 석 달만에 이십 킬로쯤 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즐겁게 다이어트를 한 것 같다. 일단 달리는 게 좋았다. 하루 두 갑씩 태우던 담배를 끊고 나자 달리기가 더 쉬워졌다. 한 달에 80만 원을 주고 시작한 피티도 재미있었다. 본격적으로 근력 운동을 시작한 게 이때가 처음이라 더 그랬다. 결정적으로 내가 닭을 좋아했다. 이때는 닭고기와 계란이 물리는 바람에 다이어트가 어렵다는 사람들 말을 이해 못 했다. 나는 점점 가벼워졌다.

 사실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다이어트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스크린에 비친 연예인들의 근사한 몸매에 반한다거나, 가끔 소식이나 전해 듣는 친구가 어느 날 SNS에 기깔나는 바디프로필을 게시한 일에 고무되어 나도 저렇게 변해야지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며칠 안에 몇 킬로를 감량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 대신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애초에 나란 인간은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살 빼기가 쉬웠다. 탄탄한 가슴과 초콜릿 복근과 느티나무 같은 허벅지를 가지리란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내가 계획한 대로 꾸준히 먹고, 달리고, 힘을 썼다. 그러다 보니 변화가 찾아왔다. 아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매일 변화해 왔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엔 아예 운동에 미쳐서 한동안 운동으로 밥벌이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의 수많은 트레이너들이 헬스장 회원들에게 당신은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의지를 불어넣는다.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당신의 목표는 꺾이지 않는다고, 세 달만 바짝 운동하고 식단 하면 권상우 몸(너무 올드한가?)이 될 수 있다고 최면을 건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건 올바른 가르침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역사의 위인들처럼 의지를 발휘하는 데에 익숙지 않고, 결과적으로 목표를 이루기는커녕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벌써 한 풀 꺾여 나약한 자신을 저주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떤 비교대상이나 워너비까지 더해진다면 결과는 더 심각해진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가장 전형적인 패턴이다.


 살을 빼고 싶으면 불굴의 의지는 주머니에 넣어 두시라. 10킬로를 감량할 때까지 빵과 라면은 입에도 안 대겠노라 피눈물 흘리며 결심하지도 마시라. 중요한 건 찬란한 미래를 떠올리며 침대에서 뒹굴지 말고 일어나 걷는 것이다. 점심때 라면 두 개에 밥 한 공기까지 말아 먹었다고 좌절해서 저녁으로 피자 한 판을 시켜 먹지 않는 것이다. 장대한 꿈을 꾸면서 거기에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을 빼고 싶다면 머릿속에서 목표를 지워버려야 한다. 오롯이 나의 속도로 달리는 하루하루가 쌓였을 때, 변화는 어느덧 삶 속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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