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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Oct 04. 2023

시속 5km

 서기 2000년 이전에 대한민국엔 비둘기호라는 열차가 있었다. 이름마저 서민적인 비둘기호는 당시 열차계의 최하위 등급으로서 저렴한 운임, 직각으로 고정된 좌석, 수동으로 열리는 출입문 등을 자랑했다. 열차 화장실을 이용할 때 대소변이 선로에 바로 떨어졌던 생각이 나서 기억이 잘못되었나 싶었는데, 찾아보니 내 기억이 맞았다. 우리나라도 철길 위에 똥을 누는 게 허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릴 때 종종 엄마 손 잡고 비둘기호를 타고 여행을 다녔다. 도심과 멀찍이 떨어져 산자락을 따라 기차를 타고 달리는 일은 어린 마음에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향수 타령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혹시 아는가. 세상에 나기 전 천국에 머물던 시절이 떠올랐는지.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눈에 비치는 모든 게 낭만적이었다. 객차와 객차 사이 공간을 채우는 노인의 담배연기도,  머리를 쉴 새 없이 좌석 위로 내밀며 뒷좌석에 앉은 친구와 떠드는 누나들도,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싶던 형아들의 기타 반주와 노랫소리도. 지금은 KTX니 ITX니 하는 비까 번쩍한 신식 열차들에 밀려 역사의 뒷방으로 물러난 그것들이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강원도 소재의 김유정역 레일파크를 찾았다. 김유정을 생각할 때면 그의 작품보다 폐결핵과 치질로 인해 스물아홉 살 나이로 요절하는 날까지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나누지 못한 비통함이 먼저 떠오른다. 외로운 넋을 위로라도 하듯 그의 생가 주변에 몇 해 전인가 관광단지가 생겼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옛 경춘선 노선을 개발해서 만든 레일파크다. 레일파크를 찾은 관광객들은 대부분 나처럼 애가 딸린 가족이나 낭만을 찾아 먼 길을 떠나 온 연인들이다. 이들은 김유정역에서 중간 휴식지까지 6킬로 구간을 4인승 또는 2인승 수동 레일바이크로 움직이고, 이후 2.5킬로 구간은 낭만열차라는 이름의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평생 고독했던 천재 작가가 되살아나 이 모습을 본다면 미소를 지을까, 아니면 배 아파할까. 나라면 설사병이 생길 것 같다.


 레일바이크로 이동하는 구간엔 네 개의 터널이 있었다. 본래 기차가 지나던 터널을 개조해서 각각의 테마가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코스를 설계한 이가 의도적으로 그 안에 사람의 인생을 담으려 한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내리막이었다. 엄마의 산도처럼 빠르게 미끄러지는 선로를 따라 내려오자 색색의 바람개비가 설치된 터널이 나왔다. 나무젓가락에 색종이로 만든 바람개비를 매달고 바람 좋은 곳으로 내달리던 유년시절이 떠올랐다. 곧이어 지구가 통째로 다가오듯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선로 주변에서 밭일을 하고 계신 할머니에게 아이들이 인사를 건넸다. 두 번째로 통통 튀는 리듬의 팝송이 흘러나오는 비눗방울 터널이 이어졌다. 모든 것이 설레었던 이십 대, 지금은 거품처럼 사라졌지만 그땐 헤어지면 죽을 것 같았던 연인들과 친구들의 얼굴이 허공에 잠시 피었다 사라졌다. 한참 오르막을 올랐다. 이것이 여행인가 훈련인가 헷갈리기 시작할 즈음 세 번째 터널이 나타났다. 몽환적인 빛깔의 조명 위로 점점이 박힌 조명이 별처럼 흐르는 공간이었다. 배경음악으로 스팅의 Shape of my Heart가 흘러나왔다. 어쩐지 로맨틱한 기분이 되어 뒷좌석에 앉은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제껏 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아준 그녀가 새삼 고마웠다. 씨익 웃어 보였다.


 왜, 뭐.


 내 맘도 모르는 여자 같으니라고. 구애에 실패한 수컷의 마음이 되어 마지막 터널로 들어섰다. 귀와 가슴을 사정없이 후드려 패는 디스코 음악과 정신없는 레이저 조명이 쏟아졌다. 문득 영어학원 강사하는 친구를 따라 이태원 클럽에 놀러 갔던 날이 떠올랐다. 그땐 바로 코 앞에서 맥주병을 들고 격정적으로 몸을 흔들던 예쁜 벽안의 여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백 배는 더 예쁜 둘째 딸이 국적 불명의 막춤으로 아빠의 혼을 쏙 빼놓고 있었다. 춤추는 딸아이를 보고 있자니 이 또한 인생의 막바지에 자식과 더불어 축제 같은 시간을 보내라는 코스 설계자의 가르침인가 싶었다.


 레일바이크에서 내려 낭만열차로 갈아탔다. 낭만열차엔 좌석 구분이 없었다. 어른 넷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장의자가 객실 중앙에 주욱 늘어서 있었고, 좌석 주변은 서서 창밖을 볼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의자는 먼저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사람이 임자였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쩌다 모르는 사람의 무릎이 닿아도 그러려니 했다. 레일바이크로 내달리느라 진이 빠져서인지, 10월이 되어서야 겨우 가을다워진 짙푸른 하늘이 보기 좋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남매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 입을 맞추는 연인, 홀로 공상에 빠진 미남자, 검표를 대신해 손님들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늙은 승무원. 열차에 탄 사람들이 북한강이라는 캔버스 위 빛을 잔뜩 머금은 수채화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 삶의 목적지는 아름다운 것들이 잔뜩 그려진 체감속도 5km의 느릿한 낭만열차 안, 사랑하는 너의 옆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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