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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Oct 07. 2023

이 닭강정엔 슬픈 사연이 있어

 그때 뒷좌석엔 파리한 얼굴의 여자가 실려 있었다. 임신 5개월 차의 여자, 구형 옵티마 승용차와 장거리 운전이 생애 처음인 초보운전자가 만드는 환장의 콜라보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헛구역질을 하는 여자, 나의 아내. 라고 부르기엔 이제 막 신행을 떠난 참이라 아내라 부르기가 어색했던 시절의 여자. 우리는 이전 날 결혼식을 마치고 뱃속의 아이가 염려되어 예식장 근처의 낡은 호텔에서 먼저 하룻밤을 보냈다. 신혼 첫날밤의 설렘 같은 건 없었다. 여자의 뱃속에 그해 5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서서히 포유류로 진화할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손톱보다도 작은 점이었던 그것은 서서히 물고기의 형상을 갖추더니 어느 날부터 꼬리 대신 팔다리가 생겨났고 결혼식 즈음해선 거의 온전한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그것 덕에 여자는 하루하루가 죽을 맛이었다. 입덧이 너무 심해서 결혼식장에서도 주례를 하는 목사님 얼굴에 대고 오바이트를 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신혼여행이고 나발이고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남편이 비행기 타는 건 무리가 될 수 있으니 강원도 속초로 자동차 여행을 가자고 얘기할 때 뜯어말렸어야 했다. 차라리 비행기를 탔으면 조종석에 있을 기장을 향해 욕이라도 시원하게 한 번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운전 뭐 같이 하지 말라고 뒤통수라도 한 대 갈기고 싶은데 저 사람이 내 신랑이었다. 평생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이었다.


 네비가 2시간을 약속한 거리를 3시간 만에 주파했다. 고속도로 운전이 처음이라 차선 변경을 못해서 느리게 가는 차 뒤꽁무니를 내내 좇다가 그 차가 IC로 빠지면 속력을 내고, 다른 느린 차가 나타나면 또 뒤에서 따라가고 하는 식으로 운행한 덕이었다. 이 양반에게 내 인생을 맡겨도 될까 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화살처럼 뒤통수에 박히는 듯했다. 지평선을 온통 아우를 듯 장대한 설악산의 풍경이 우리를 반겼지만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약한 호텔을 찾아 짐부터 풀었다. 이후에 속초의 명소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닐 생각이었는데 더 이상 아내를 차에 싣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점심 먹을 때가 지나서 일단 식사부터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정말 멍청했던 게, 속초에는 입덧을 하는 아내가 먹을만한 음식이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이때 아내는 밥도 제대로 못 넘겨서 국수와 계란프라이 정도로 연명하던 시기였다. 돼지국밥 맛집을 찾아두었으니 먹으러 갈까 물었을 때 아내가 왜 그렇게 절망적인 얼굴을 했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당장 미쳤냐는 이야기가 나왔겠지만 이 시절의 아내는 마냥 수줍고 착했다. 군소리 없이 돼지 냄새 진하게 풍기는 식당으로 함께 들어갔다. 나는 시장이 반찬이라고 눈치 없이 실컷 먹었지만 아내는 국밥 한 그릇을 반도 비우지 못했다. 아아, 별로 배가 고프지 않은가 보구나. 정말 그렇게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한 대 걷어차 주고 싶다.


 숙소로 가기 전에 유명한 닭강정 집에 들르기로 했다. 사실 이것도 순전히 내 욕심이었다. 아내는 입덧이 심해진 뒤론 튀긴 음식을 먹지 못했다. 기름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속초에 왔으니 닭강정은 먹어 보는 게 도리 아니겠냐고 아내를 설득했다. 쓰다 보니 정말 쓰레기가 따로 없다. 인간이 덜 된 나를 끊임없이 인내하며 지금까지 사랑해 준 당신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하고 싶다. 여하튼 닭강정을 사러 갔다. 가게에 들르니 또 욕심이 생겨서 사이즈를 큰 거로 시켰다. 맥주와 함께 매콤 달콤 바삭한 닭강정을 먹을 생각에 어깨춤이 절로 났다. 그러고 보니 와이프는 술도 못 하는데 나 혼자 마실 생각에 들떠 있었구나. 당신이 오래전에 우리가 이혼하는 상상을 한 일이 있노라 얘기했던 게 이제야 이해가 된다. 당신 남편은 여러모로 저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밤공기가 훈훈해서 숙소 테라스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맥주를, 당신은 음료수 캔을 들고 가운데에 닭강정을 놓았다. 당신은 지금도 그렇지만 맛난 음식이 있으면 늘 내 입에 먼저 넣어줬다. 이날도 그랬다. 내 입에 큰 조각을 하나 넣어주고, 마지못해 작은 조각 하나를 집어 자기 입에 넣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나는 당신이 그렇게 잘 먹는 사람인 걸 몰랐다.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닭이 남으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말하는 것도 잊고 냠냠 맛나게도 먹는 당신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저릿했다. 닭이 식어서 기름냄새가 나지 않은 덕인지, 조청으로 만든 깔끔한 양념 맛 덕인지, 그때까지 쫄쫄 굶다시피 해서 못 먹던 음식도 먹을 수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잘 먹는 당신을 보면서 짠한 마음이 든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두 아이가 밥 먹는 걸 볼 때도 비슷한 마음이 든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 식구가 밥을 잘 먹고, 거기에서 힘을 얻어 제 나름 고달픈 삶을 견뎌내는 모습에서 어떤 감동을 느끼는 것 같다. 닭강정을 먹는 당신의 모습도 그랬다. 엉망진창이었던 운전솜씨도 잊고, 입덧도 잊고, 앞에 있는 남자가 천하의 머저리라는 사실도 잊고 잘 먹어주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그리고 또 아팠다.


 이 글은 이기적이었던 나를 반성하고 예나 지금이나 천사와 같은 당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랜 추억을 끄집어내어 적은 것이다. 저녁식사로 닭강정을 먹고 싶었는데 살찐다고 당신이 퇴짜를 놔서 욱해서 적는 글이 절대 아니다.







이미지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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