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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Oct 14. 2023

네 마누라는 참 안 됐다

 악플이 달렸다.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한 내 아내가 어쩌면 국정원 요원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달린 댓글이었다. 그런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장사를 했으면 돈 깨나 벌었으리란 말과 함께 신랑 잘못 만나 공개적으로 웃음거리가 된 아내가 정말 불쌍하다는 얘기를 했다. 자신이 남긴 글을 본다면 내 아내가 펑펑 울 것이니 절대 보여주지 말란 말도 덧붙였다. 오해하지 마시라, 우리 부부는 예나 지금이나 참 좋다 하고 댓글에 답을 하려는데 또 알림이 올렸다. 이번엔 다른 사람이 남긴 훈훈한 댓글에 이게 좋아 보이는 건 당신 착각이노라 같은 뉘앙스의 댓글을 이어 붙였다. 1대 1 대화로 곡해한 부분을 풀어보려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댓글을 단 사람을 차단하기 전까지 잠시 고민을 했다. 어쩌면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혹시 전에 국정원 글, 기분 나빴어?

 아니, 왜?

 누가 당신이 불쌍하다고 얘길 하길래.

 뭔 소리야.

 내가 당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데.

 뭐래. 차단해 버려.


 그렇게 얘길 마친 뒤에도 기분이 썩 개운치 않았다. 곱씹을수록 치밀한 악플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건 외모로 인기를 얻은 인플루언서에게 못생겼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내가 유명인사가 아니라 조금 경우는 다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그 사람은 내 안에 세워진 가장 견고하고 따뜻한 부분 중 하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내 아내를 철부지 남편에게 놀림이나 받는 불쌍한 여자라 말하고, 말로 다하지 못해 글로 쓰는 아내에 대한 내 마음을 쓰레기 취급했다. 장사했으면 돈 깨나 벌었을 텐데란 말로 우리 집 경제사정까지 깔보았다. 욕을 하지 않았을 따름이지 이게 악플이 아니면 뭘까. 이쯤 되자 그 댓글을 적은 사람의 마음 상태가 궁금해졌다.


 어디서 읽은 건데 사람이 누군가를 비난할 때는 상대방의 모습에 비춘 자신의 단점을 보고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우유부단하다고 욕한다면 실제로는 우유부단한 자신의 모습을 비난의 대상이 되는 상대에게서 발견하고 욕을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전적으로 옳진 않겠지만, 단순히 개선점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을 드러내며 누군가를 비난한다면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된다. 가끔 애들을 혼낼 때 나 또한 그러고 있는 걸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얼마 전인가는 제 말만 하고 아빠 얘길 도무지 들어주지 않는 첫째에게 한 마디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 고집불통인 모습은 나를 빼닮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악플을 단 사람의 심리도 조금 이해가 된다. 그(그녀)는 아마도 배우자의 말마디나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고, 어쩌면 자신에게 진정으로 사랑을 전하는 말이나 글줄을 접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굳이 장사 이야기를 꺼낸 건 하고 있는 사업이 썩 시원치 않아서 일거라 짐작해 본다. 적어 놓고 보니 꽤 그럴듯하다. 너무 적나라해서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내게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려준 이 플랫폼에서 또 누군가는 악의적이거나 사고가 결여된 비난의 말로 인해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함께 글을 쓰는 동료로서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그리고 창조력이라고는 남을 비난하는 일 외엔 발휘하지 못하는 모든 가여운 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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