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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Oct 26. 2023

남편이 질투가 심합니다

 반년 만의 소방서 회식 자리였다. 입사 동기 누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남편이 너도 회식에 오냐고 묻더라.

 나? 왜?

 질투하는 거지 뭐.

 나를 질투한다고?

 응. 내가 너 되게 가정적이라고 얘기했거든.

 누나도 피곤하겠구먼.


 남자가 돼서 마음을 좀 넓게 써야지. 자기 와이프 회사 동료까지 질투를 하면 쓰나. 아니면 평소에 나처럼 집에서 밥을 하던가. 나는 나오기 전에 함박 스테이크 구워서 예쁘게 한 상 차려줬다고. 나보다 와이프한테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왜 질투를 하나. 다 자기가 할 일을 안 해서 시기하고 불안해하고 그런 거다. 나는 이제껏 질투라는 걸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술자리가 있어도 9시 전에 칼 같이 귀가하는 일등 남편. 내가 최곤데 질투할 이유가 없지.


 도어록 숫자를 누르는 소리에 두 딸이 아빠다! 를 외치며 맨발로 달려온다. 아내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내가 술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몸에 밴 고기 냄새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양치를 하고, 아이들 책 읽힐 준비를 한다. 한 잔 걸쳐서 기분 좋으니 오늘은 각자 두 권, 둘이 합해서 네 권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내가 소파 가운데 앉고, 첫째는 왼편에, 둘째는 오른편에 앉는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우릴 보고 아내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한 마디 한다.


 오늘 운동 가려고 택시 탔는데, 기사님이 운동하는 여자가 멋지다는 얘길 했어.


 아내는 그 말이 기분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 운동하는 여자 멋지지. 그런데 굳이 와이프가 탄 택시기사님이 그런 얘길 꺼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아니 와이프가 그 얘길 내 앞에서 꺼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기사님이 잘생겼나. 목소리가 좋았나. 그래서 무의식 중에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이 돼서 굳이 우리 네 사람의 행복한 순간에 운동하는 여자가 멋지다고 말한 택시 기사님을 떠올린 건가. 알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와이프는 한 번씩 결혼 전에 연애했던 사람들 얘길 꺼내곤 했다. 한 예로 가수 지망생이었던 친구. 아, 그런데 걔는 담배를 너무 태워서 싫었다고 했지. 아니면 다이어트를 해서 몰라보게 살을 뺀 남자. 그 남자는 나랑 생김이 비슷했다고 얘길 해서 솔직히 좀 기분 나빴다. 그래봐야 당신이랑 결혼한 건 나지 걔가 아냐. 그리고 또 누구였더라. 군인? 개를 키웠다고 했던가. 내 생각에 비염이 심한 당신을 만나면서도 개를 포기 못했으니 그쪽도 글렀다. 사귄 적은 없지만 통장을 보여준 사람도 있다고 했지. 나도 있다 통장. 마이너스 통장도 통장이니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체육관에 갔을 때 새로 등록한 어린 친구에게 당신이 온통 시선을 빼앗겼던 게 생각난다.


 저기 봐, 괴물이 있어.


 그래, 정말 덩치도 좋고 힘도 세더라. 나더러는 너무 크고 무겁다더니 거길 보고는 왜 또 감탄을 하는 건데. 나도 확 백이십 킬로까지 살찌워 버릴까 보다. 당최 모르겠다. 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당신이 내게 관심을 가질지. 어떤 말을 하면 내게 귀 기울일지. 같이 산 지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내가, 당신이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당신에게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 맘을 잘 몰라주는 것 같아서 어쩔 땐 많이 섭섭하다. 그래서 회식을 마친 이 밤, 술기운을 빌려 당신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벌을 받길 기도한다.


 애들 방 치우다가 레고나 밟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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