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만의 소방서 회식 자리였다. 입사 동기 누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남편이 너도 회식에 오냐고 묻더라.
나? 왜?
질투하는 거지 뭐.
나를 질투한다고?
응. 내가 너 되게 가정적이라고 얘기했거든.
누나도 피곤하겠구먼.
남자가 돼서 마음을 좀 넓게 써야지. 자기 와이프 회사 동료까지 질투를 하면 쓰나. 아니면 평소에 나처럼 집에서 밥을 하던가. 나는 나오기 전에 함박 스테이크 구워서 예쁘게 한 상 차려줬다고. 나보다 와이프한테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왜 질투를 하나. 다 자기가 할 일을 안 해서 시기하고 불안해하고 그런 거다. 나는 이제껏 질투라는 걸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술자리가 있어도 9시 전에 칼 같이 귀가하는 일등 남편. 내가 최곤데 질투할 이유가 없지.
도어록 숫자를 누르는 소리에 두 딸이 아빠다! 를 외치며 맨발로 달려온다. 아내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내가 술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몸에 밴 고기 냄새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양치를 하고, 아이들 책 읽힐 준비를 한다. 한 잔 걸쳐서 기분 좋으니 오늘은 각자 두 권, 둘이 합해서 네 권을 가져오라고 말한다. 내가 소파 가운데 앉고, 첫째는 왼편에, 둘째는 오른편에 앉는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우릴 보고 아내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한 마디 한다.
오늘 운동 가려고 택시 탔는데, 기사님이 운동하는 여자가 멋지다는 얘길 했어.
아내는 그 말이 기분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 운동하는 여자 멋지지. 그런데 굳이 와이프가 탄 택시기사님이 그런 얘길 꺼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아니 와이프가 그 얘길 내 앞에서 꺼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기사님이 잘생겼나. 목소리가 좋았나. 그래서 무의식 중에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이 돼서 굳이 우리 네 사람의 행복한 순간에 운동하는 여자가 멋지다고 말한 택시 기사님을 떠올린 건가. 알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와이프는 한 번씩 결혼 전에 연애했던 사람들 얘길 꺼내곤 했다. 한 예로 가수 지망생이었던 친구. 아, 그런데 걔는 담배를 너무 태워서 싫었다고 했지. 아니면 다이어트를 해서 몰라보게 살을 뺀 남자. 그 남자는 나랑 생김이 비슷했다고 얘길 해서 솔직히 좀 기분 나빴다. 그래봐야 당신이랑 결혼한 건 나지 걔가 아냐. 그리고 또 누구였더라. 군인? 개를 키웠다고 했던가. 내 생각에 비염이 심한 당신을 만나면서도 개를 포기 못했으니 그쪽도 글렀다. 사귄 적은 없지만 통장을 보여준 사람도 있다고 했지. 나도 있다 통장. 마이너스 통장도 통장이니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체육관에 갔을 때 새로 등록한 어린 친구에게 당신이 온통 시선을 빼앗겼던 게 생각난다.
저기 봐, 괴물이 있어.
그래, 정말 덩치도 좋고 힘도 세더라. 나더러는 너무 크고 무겁다더니 거길 보고는 왜 또 감탄을 하는 건데. 나도 확 백이십 킬로까지 살찌워 버릴까 보다. 당최 모르겠다. 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야 당신이 내게 관심을 가질지. 어떤 말을 하면 내게 귀 기울일지. 같이 산 지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내가, 당신이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당신에게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 맘을 잘 몰라주는 것 같아서 어쩔 땐 많이 섭섭하다. 그래서 회식을 마친 이 밤, 술기운을 빌려 당신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벌을 받길 기도한다.
애들 방 치우다가 레고나 밟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