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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Nov 13. 2022

소방관에게 성역은 필요 없다

 용산 소방서장이 입건되었다. 참사의 최일선에 있던 대원들은 하나같이 분을 삭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천성이 둔감하다고 서른여덟 평생을 타박을 받고 살았지만, 요즘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의 병'이란 게 무언지 알 것도 같다.


 어제는 주말이라 아이들과 시골집에 밥을 먹으러 갔다. 엄마가 신문 사설 오려둔 것 하나를 내게 보여주었다. 중고생 시절에 공부하란 말 대신에 일간지의 사설을 하나하나 스크랩해서 내 책상 위에 올려두던 엄마의 모습이 잠깐 떠올랐다. 사설의 제목은 '소방관 건드리지 마라'였다. 한 없이 낯이 뜨거워졌다. 글쓴이는 나도 잘 모르는 우리 조직의 정신을 몇 가지 예를 들어 이야기했다. 911 테러 당시에 희생되었던 수 백의 소방관이 가슴에 품은 정신, 가스 누출 사고로 의식을 잃은 요구조자에게 자신의 산소마스크를 씌우는 정신, 불길 밖으로 몸을 피하지 않고 되려 헤집고 들어가는 정신, 등등.


 누군가 나의 일을 고귀하다 이야기할 때마다 스스로 되뇌는 말이 있다. '내 일이니까 우쭐할 필요 없다.' 구급차에 실려가며 감사와 사과를 전하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뉘앙스로 대답한다. '그냥 제 일하는 거예요. 맘 쓰지 마세요.' 그래서 대한민국이, 국민들이 소방에게 황금으로 만든 관을 씌워주고 우리가 자리한 땅을 성역이라 이름할 때마다 참 부끄러워진다. 대명천지에 더 귀한 사람이 어디 있고 더 귀한 직업이 어디 있는가. 소방관도 같은 사람이고, 사람의 일을 할 뿐이다.


 이번 참사 이후로 소방을 성역화하지 말라고, 죄를 지었으면 달게 받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본다. 옳은 말이다. 영웅의 이면에 '컵라면 쇼방, 족구왕 소방관'의 대체 자아가 있음을 순순히 인정하라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우리는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 뺄 필요가 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방의 성역화는 사실 일선 소방관들이 바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는 말은 정말이지 부담스럽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정신은 고귀하거나 거창한 서사를 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어제 읽은 신문 사설처럼 소방관 욕하지 말라고 하는 말들이 때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짐처럼 느껴진다. 욕먹을 짓을 했다면 욕을 먹어야지. 대한민국 소방관이란 타이틀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저 나의 바람은, 어쩌면 입건된 용산 소방서장의 바람은, 나아가 일선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의 바람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가지고 있는 능력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인명을 구하는 나의 소명을 위해 그 자리에서 고군분투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것. 내가 현장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의 자리를 지키고 도망하지 않았음을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소방관에게 성역은 필요 없다. 다만 그날 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사람들이 그것만 알아준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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