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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Oct 24. 2023

엄마가 살았습니다

 옛날 옛날에 엄마가 살았습니다. 엄마는 만으로 열여섯이 되던 1955년에 결혼했습니다. 엄마는 시집가는 길이 피난 가는 길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처음엔 만난 적도 없는 남자에게 시집보내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될 청년을 보자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마른 몸에 긴 얼굴이 썩 잘생기진 않았지만 아주 순한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부모님 농사일을 돕느라 피부가 햇볕에 그을린 청년이 엄마 눈엔 꼭 갈색 말 같았습니다.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샛별을 보며 일어나 해넘이가 산등성이에 잔불만 남길 때까지 땅을 일궜습니다. 엄마는 막걸리와 김치로 새참을 차렸습니다. 남편은 술이 좀 들어가면 수다스러워졌습니다. 고생이 많네. 고맙네. 예쁜 사람이 옷이 그게 뭔가. 언제 읍내 가거든 한 벌 사 오게. 푸근해진 얼굴로 말했습니다. 엄마는 그 말이 듣기 좋아서 읍내에 갈 때면 잊지 않고 막걸리를 받아왔습니다.


 시집온 지 이 년 만에 첫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다시 이 년 뒤엔 딸이, 또다시 삼 년 뒤엔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막내아들을 국민학교에 보내고 나자 엄마 나이는 어느덧 서른을 넘겼습니다. 딸이라고 공부 못 시키고 아들이라고 더 시키고 하기가 싫어서 엄마도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식 솜씨가 좋아서 장 담근 걸 가져다 부잣집 사모님들에게 팔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읍내에 작은 식당을 차렸습니다. 마침 개발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인부들 덕에 장사가 아주 잘 됐습니다. 가게를 시작한 뒤로 남편은 조금 일찍 농사일을 마치고 엄마를 데리러 왔습니다. 남편은 가게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일이 끝나면 엄마의 손을 꼭 쥐고 어스름 달빛 아래 신작로를 용감한 기사처럼 걸어갔습니다.


 아들들은 멀리 도시로 나가 직장을 잡더니 한 해 걸러 하나씩 장가를 가겠다고 아가씨들을 데려왔습니다. 모시고 살고 싶으니 도시로 가잔 말에 엄마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엄마에게 집은 삼십 년이 넘도록 남편과 함께 머문 시골집뿐이었습니다. 얼마 뒤, 평생 엄마랑 같이 살 거라던 딸도 집을 떠났습니다. 남편을 똑 닮은 남자가 찾아와서 딸을 자기한테 달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그날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평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식들이 집을 나간 이후엔 시간이 빨리 흘렀습니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처음 옷을 선물했을 때 엄마의 나이는 예순다섯이었습니다. 유행하는 밍크라고 했습니다. 무거워서 도저히 입을 수  없는 그 옷을 선물하고 남편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년이 이틀처럼 지나갔습니다.


 엄마는 오랜만에 푹 잠을 잤습니다. 한동안 배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서 통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남쪽으로 낸  큰 창에서 가을볕이 어루만지듯 쏟아져 기분 좋게 눈을 떴습니다. 엄마는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아 놀랐습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 내외, 딸과 사위, 사촌 오빠와 그 부인, 웬일인지 옆집 할머니까지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소방관과 경찰관도 보였습니다. 엄마는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식구들이 다 함께 가족사진을 찍은 날에도 지금과 비슷한 기분이었습니다.


 날씨가 아주 좋았습니다. 엄마는 바람을 신고, 구름을 썼습니다. 우는 아이들이 걱정됐지만 그만 집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갈색 말처럼 햇볕에 그을린 청년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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