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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Nov 11. 2023

쌀국수

 악감정이 있었던 것 같다. 베트남 서민들이 시장통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때 먹는 음식이라고 들었는데 비싸도 너무 비쌌다. 돼지고기로 육수를 낸 건 기본 만 원, 소고기로 육수를 낸 건 만 이천 원을 받았다. 게다가 화장품 맛이 나는 풀을 얹어먹는 음식이라니. 맛도 가격도 비합리적인 베트남 쌀국수가 한국에서 유행하는 이유를 처음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엄마가 추천해 준 쌀국숫집에 다녀온 뒤로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정확히는 젊은 베트남 여자를 아내로 맞은 사장님 내외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돼지고기 국수는 오천 원, 소고기 국수는 육천 원을 받았고 프랜차이즈 베트남 음식점에서 먹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진한 맛이 좋았다. 가게는 구시가의 재래시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근근이 방문하는 옛사람들과 함께 빛바랜 유물이 되어가던 재래시장이 덕분에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가게는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붐볐다. 고향 생각이 나는 맛이기라도 하듯 특히 베트남 청년들이 많았다. 한국말과 베트남 말이 뒤섞여 주문이 오갔다. 돼지뼈와 소뼈를 삶아내는 눅진한 향기, 이국 청년들의 낯선 체취가 한국의 재래시장 한 구석을 베트남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익숙해진 나는 가게를 찾을 때마다 잊지 않고 말했다. 이모, 여기 고수 많이 주세요.


 남자는 허리가 아파 움직이지 못했다. 주민등록 상에는 겨우 쉰을 넘겼지만 계속되는 항암치료 탓에 머리는 다 빠지고 몸은 쪼그라들어서 아직 젊은 빛이 남은 얼굴만 빼면 칠십 먹은 노인이나 다름없었다. 누워 있는 남자의 곁엔 젊지만 지친 얼굴의 베트남 여자가 있었다. 말이 어눌한 걸로 보아 한국에 뿌리를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관계를 묻자 누워 있는 남자의 부인이라고 했다. 사실 자주 보는 경우였다. 젊은 외국인 여자가 나이 먹은 한국 남자에게 시집온 집에서 신고를 하는 것 말이다. 대개는 술에 취한 남자가 여자를 두들겨 패서 경찰과 함께 출동을 나갔다. 그러나 이 집 남자는 겨우 숟가락을 들 힘도 없어 보였다. 기운이 뻗치는 남편에게 두들겨 맞고 사는 여자와 제 몸 하나 못 가누는 남자와 함께 사는 여자, 어느 쪽이 더 불행할까 짐작할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여자가 많은 것을 포기하고 한국 땅에 왔으리란 사실이었다. 그리운 사람들과 그리운 거리와 그리운 맛과 냄새를 무엇과 맞바꿨을까. 어쩌면 건넛방에서 유령처럼 수런거리는 늙은 시부모님의 목소리, 죽음을 앞둔 남편, 빠르게 닳아서 겨우 한 줌 남은 젊음이 여자가 가진 전부일지도 몰랐다.

 인조가죽으로 만든 간이형 들것에 남자를 싣고 밖으로 나왔다. 11월치곤 푸근한 날씨였지만 남편을 뒤따르는 여자는 오소소 몸을 떨었다. 그녀가 맛있는 쌀국수 한 그릇을 먹고 싶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외할머니의 만둣국을 떠올리는 일과 비슷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산더미처럼 빚어 둔 만두가 작년인가 동이 났다. 이후론 외할머니의 만둣국을 더 이상 맛볼 수 없었다. 11월에도 따뜻한 여자의 고향 어딘가에 그것처럼 그리운 쌀국수가 하얀 대접에 담겨있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쌀국수가 먹고 싶어 예의 가겟집에 전화를 걸었다. 예약을 해야 식사가 가능할 만큼 바쁜 집이었기 때문이다. 한두 번 신호가 가다가 끊어졌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사장님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저희 폐업했어요. 죄송합니다.


 남자 사장님이 손님들에게 뻣뻣했다는 소문, 가게를 찾는 베트남 청년들이 시장 분위기를 흐린다고 몇몇 사람들이 상인회에 불만을 토로했다는 소문 등이 있었다. 여자가 바람이 났다는 이야기도 돌았는데, 오만 사람의 입을 거치다 보니 지레짐작이 기정사실로 굳어져 버렸다. 장사를 접었으니 거름 같은 소문들은 점점 부풀려지다 제 풀에 꺾여 아무도 찾지 않는 전설이 될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마트에서 인스턴트 쌀국수를 사 왔다. 질기고 텁텁한 맛이 나서 반도 못 먹고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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