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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Nov 15. 2023

까르보나라와 된장찌개

 모 방송사 뉴스에 소방본부 상황실이 나왔다. 119를 부르는 비응급환자 혹은 수시 이용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상황실을 취재한 모양이었다. 나를 비롯하여 일선에서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는 직원들은 그런 사람들이 너무 익숙한 나머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막상 통계를 내서 수치화시켜 놓으니 문제가 심각해 보였다. 구급차를 부르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부르는 경우가 절반이었다. 거동이 가능하더라도 어디가 아픈 곳이 있으면 119에 신고할 수 있다는 식으로 기준을 관대하게 잡아도 그랬다. 다시 말해, 안 아픈데도 구급차를 부르는 사람들이 절반이라는 의미였다.


 구급차로 치킨집에 데려다 달라는 분들도 있었어요. 하수구에 신발이 빠져서 그걸 건져달라는 분도 있었고요.


 인터뷰를 하던 상황실 직원의 말이었다. 저 정도 가지고 뭘. 하고 속으로 뇌었다. 며칠 전에는 시내에서 30분 거리의 교외에서 배가 아프단 신고를 받고 아저씨 한 분을 응급실로 데려다준 일이 있었다. 아저씨는 막상 병원에 도착하니 상태가 나아졌다며 진료를 거부하고 내가 보고 있건 말건 병원 근처 실내 포차로 들어가 버렸다. 한 사람의 애주가로서 절실하게 한 잔 하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인간은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그 도리를 모르거나 모른 척하고 산 지가 오랜 것처럼 보였다. 아저씨를 비롯해서 내가 만난 특별한 이웃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중에 함께 뉴스를 보던 큰 딸이 말했다.

 아빠, 치킨집에 왜 소방차를 타고 가?

 그러게. 차비가 없었나 보지 뭐.

 아빠가 장비도 열심히 챙겼는데, 왜 치킨집엘 가?

 치킨이 많이 먹고 싶었나 봐.

 신발도! 새로 사면 되지, 왜 아빠를 불러?

 집에 신고 갈 게 없어서 그런 거겠지.

 이상한 사람들이네.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야.

 제 아빠가 아픈 사람 구해주고 불나면 뛰어들어가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 공짜 택시에 술 취한 사람들 심부름꾼 역할까지 도맡아 한다는 건 상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작은 콧구멍으로 콧김을 뿜으며 이상한 사람들이네를 연발했다. 어쩌면 아빠는 그 이상한 사람들 덕분에 먹고사는 건지도 몰라. 그 사람들 아녔으면 소방관이 지금처럼 많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거든. 하고 설명을 해줄까 하다가 어쩐지 내 직업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될 것 같아서 관뒀다.


 이어지는 뉴스에서는 공영방송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바뀐 사장이 직원들과 상의 없이 프로그램 편성을 바꾸고 특정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하차시켰다는 소식이었다. 이를테면 그건 된장찌개로 유명한 맛집 사장이 주방장을 교체한 뒤 주력메뉴를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로 변경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건물주나 건물주의 사모님이 까르보나라를 애정한다는 소문이 무성하긴 해도 확인할 길은 없었다. 술 취해 119를 부르는 사람도 다 같은 급한 환자라고 여기고 구급차에 싣는 것처럼, 이제 까르보나라를 된장찌개라 믿고 먹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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