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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Nov 19. 2023

죽도록 달린 너에게

 새 차가 왔다. 이제까지 쓰던 구식 스타렉스 구급차를 곧 폐차한다.


 구급차의 내용 연수는 5년이다. 즉 5년이 지나면 사용하지 않는다. 일반 승용차에 비하면 수명이 과하게 짧다고 느낄 수 있지만 구급차의 운용방식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우선 구급차는 낮밤이 없다. 사람만 교대로 근무를 할 뿐이지 차가 바뀌는 건 아니다. 날이 덥거나 춥거나  엔진이 과열되어 있거나 바짝 얼어붙어 있거나 상관없이 출동벨이 울리면 30초 이내에 무작정 차고를 탈출한다. 현장에 도착해서 환자를 만나 처치를 하거나 병원 앞 대기를 하는 중에도 늘 시동이 걸려있기 때문에 엔진이 공회전하는 시간도 많다. 아마 택시보다도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구급차를 살살 몰고 다닐 수 없다는 점이다. 출동부터 환자를 병원에 이송할 때까지 운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무법자로 빙의해 도로를 질주한다. 방지턱을 보지 못하고 달리다 차가 날아오르고 요란한 소릴 내며 착지하는 건 기본이고 출퇴근길 반대차선 역주행, 교차로에서 빨간 신호에 건너가기, 게다가 늘 앞차들과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하며 달리기 때문에 브레이크 패드가 남아날 일이 없다. 일반적으로 산간 오지나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곳은 배달차량이 다니지 않지만 사람을 싣고 나르는 구급차는 그런 예외가 없다. 주먹만 한 자갈이 굴러다니는 산길이나 장맛비가 내린 직후에 진창이 된 시골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겨울날엔 도로가 온통 빙판이 된 시골 마을에서 언덕배기에 사는 환자를 데리러 가다 차가 올라가질 못해 삽으로 땅에 흙을 펴 바르며 겨우 등반에 성공했던 적도 있었다.


 좁은 골목길이나 좌우로 나무가 빼곡하게 자란 길도 줄기차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겉모습도 성할 날이 없다. 자세히 보면 도장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심전도 모양 스티커도 너덜거린다. 자잘한 접촉사고 같은 건 자체적으로 해결한답시고 차량용 컴파운드를 가져다 바른 뒤 문구사에서 파는 아이들 미술용 붓으로 페인트를 덧칠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드름을 짜내고 난 뒤 거뭇하게 딱지가 들러붙은 것 같은 땜질 자국 투성이다. 가끔 세차라고 해봐야 올이 다 나간 데다 모래가 알알히 박힌 솔로 대충 비누질을 하고 소화전에서 물을 끌어다 관창으로 샤워를 시키는 정도지만 그나마도 세차를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험지로 출동을 나가는 바람에 본래의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원상 복구되기 일쑤다. 폐차시키는 구급차는 이런 험난한 세월을 5년도 넘게 견뎠다. 본래 좀 더 일찍 불용처분이 되었어야 하지만 다른 센터 구급차들이 이어달리기하듯 연달아 고장 나는 바람에 땜빵으로 운용을 하느라 몇 개월을 더 현역으로 뛰었다. 농담 삼아 팔팔한 젊은 놈들은 맨날 어디가 망가지는데, 갈 때가 된 네가 제일 멀쩡하구나 하고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차에 오르고 시동이 걸리자마자 안다. 엔진은 마치 문제 있는 사람의 심장처럼 엇박으로 피스톤질을 하고, 휠 얼라인먼트(자동차 차체 정렬)도 하지 않은지 오래되어 평지를 가는데도 핸들이 떨어져 나갈 듯이 진동한다. 사람이라면 소생술을 거부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라도 있겠지만 구급차는 자기를 대체할 무언가가 출현하기 직전까지 고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 차가 나왔을 때 마음이 기뻤다. 반짝이는 새 차를 몰고 다닐 수 있어 신이 나는 게 아니라, 5년 간 28만 킬로를 쉬지 않고 달린 놈을 이제야 보내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기뻤다.


 너라고 구급차로 태어나고 싶었을까. 긴 앞코에 벤츠 마크를 달고 왁스를 발라 번쩍이는 차체를 뽐내며 달리는 운명도 어딘가에 있었을 텐데. 먼지 한 톨 묻지 않게 아침저녁으로 휴대용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는 세심한 주인을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한 20년도 넘도록 어떤 사람이나 가족의 귀한 벗으로 살다가 갔다면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대신 너는 짧은 시간 죽도록 일만 하고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피가 흐르지 않는 물건을 두고 뭐 그리 감상적이냐고 누군가 물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다.


 고생 많았다. 그리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줘서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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