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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Nov 22. 2023

모두가 별이었다

 출동 중에 집중력이 조금 흐트러졌다. 새벽시간이라 그랬다면 핑계겠지만 사실 새벽이라서 그랬다. 바이오 리듬이 바닥을 찍는 새벽 4시의 출동이었고 신고자와 전화를 했을 때 크게 위급하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알았고 구급차 히터에서 나오는 바람이 얼어있던 몸을 느릿느릿 덥히고 있었다. 잠이 오진 않았으나 조금 취한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풍경을 눈으로 퍼마셨다. 그러다 비상등을 껌뻑이며 정차 중인 쓰레기 수거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전봇대에서 쓰레기를 집어 올리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형광 녹색에 반사판이 박음질된 조끼 같은 걸 입고 있었는데 있는 대로 액셀을 밟는 늦은 밤 도로의 무법자들의 눈에 그게 들어오기나 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누가 민원이라도 걸까 봐 사이렌은 끄고 경광등만 요란하게 번쩍이며 그 옆을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청소차 인부들 중에 누구도 우릴 주목하지 않았다.

 사거리 신호 앞에 서 있을 때 오토바이 한 대가 슬며시 구급차 앞으로 들어섰다. 머플러가 드드드드 떨며 솜사탕 같은 희멀건 매연 덩어리를 뱉었다. 그 모습이 꼭 너네 별일 아닌 걸로 출동하는 거 다 안다, 그러니 끼어든다고 너무 뭐라 하지 말아라. 내 고객은 새벽 4시에 허기를 못 이겨 통닭을 주문하는 사람이다.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심히 이해가 되어 신호가 바뀌자마자 부리나케 내달리는 오토바이를 향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은 주택공사에서 시공한 오래된 아파트 14층이었다. 엄마가 컨디션이 좋지 않고 자기를 잘 못 알아보는 것 같다는 신고였다. 환자는 올이 다 풀린 분홍색 꽃무늬 잠옷을 입고 있었다. 검정과 회색과 흰머리가 뒤섞여 떡이 지고 탈모가 와서 두피 곳곳이 비어 있는 모습이 오래된 마대 걸레를 얹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환자는 어딘지 조금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성함?

 네, 어머님 이름이요.

 내 이름. 내 이름.

 골똘히 생각하는 엄마를 지켜보고 있던 딸이 답답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엄마 내 이름이 뭐야.

 너?

 그래. 내가 누구야.

 너는.

 다시 말을 멈추고 고민하는 그녀를 두고 가족들에게 물었다. 어머니 앓고 계신 질환이 뭐 있나요. 그러자 당뇨가 있다는 답이 돌아왔고, 엊저녁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혈당을 체크하니 겨우 50을 넘겼다. 꿀물을 진하게 타서 먹인 뒤 환자를 데리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환자는 마법처럼 정신을 차렸다. 자기 이름, 딸의 이름은 물론이고 내 이름이 뭐냐고 묻자 제복에 붙은 명찰을 보고 정확하게 답했다. 돈도 비싼데 자기가 왜 응급실 진료를 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얘길 하길래 그래도 한 번 검사는 받아보시라고 설득했다.


 인계를 마치고 나니 새벽 4시 반이었다. 응급실 옆에는 프랜차이즈 도넛 가게가 하나 붙어 있었는데 매장 오픈을 담당하는 직원이 죽어라고 봉지에서 도넛을 꺼내 매대에 진열하고 있었다. 출출한 김에 들러서 도넛에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으나 유리창 바깥에서 매장 안쪽을 기웃거리는 나를 발견하고 직원이 더욱더 속도를 올려 도넛 봉지를 까뒤집는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부러 도넛 가게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담배 태우러 간 동료들을 기다렸다. 갑자기 여자 허벅지만 한 고양이가 일 초에 한 번씩 거의 음미라도 하는 것처럼 우아하게 걸음을 떼며 나타났다. 황토색 줄무늬에 얼굴 한쪽은 검은 털로 뒤덮여 있어 꼭 해적이 안대를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고양이는 야행성이니까 해가 밝아 잠들기 전에 제 영역을 순시라도 하는 것 같았다. 척척, 발맞춰 경쾌한 소릴 내며 담배를 다 태운 동료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가 재밌는지 이를 드러내면서 낄낄 거리는 모습이 꼭 대여섯 살 어린애들 같아서 그걸 보고 별처럼 눈이 부시단 생각을 했다.

 그 시간, 깨어있는 모두가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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