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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Nov 27. 2023

소방관을 고발합니다

 그 소방관은 저를 보자마자 대놓고 창피를 줬어요. 뭐라더라, 이런 일로 구급차를 부르시면 안 됩니다. 쪼끄만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면서 말을 하는데 얼마나 무섭던지. 제가 아프니까 구급차를 불렀지 멀쩡한데 불렀겠어요? 그걸 겨우 이런 일이라고 얘길 하니까 솔직히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모욕감이 느껴졌어요. 그래도 고생하는 분들이란 거 알기 때문에 제가 참았죠. 일이 힘들어서 짜증이 나는 걸 환자들한테 푸는구나 싶었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공무원들이 뭐 그렇죠. 가만있으면 따박 따박 월급 나오니까 자기 일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 같아요. 친절 봉사까진 안 바라더라도 최소한 예의를 갖춰야 하는 건데 잘릴 염려가 없으니까 그게 참 어려운가 봐요.


 제가 30분 뒤에 구급차를 보내달라고 한 것도 사실 소방관 분들 생각해서 그런 거거든요. 갑자기 신고하면 헐레벌떡 출동하다 다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도 나갈 준비 하는 동안 천천히 오시란 뜻에서 그렇게 말한 건데, 이 소방관이 웃긴 게 또 그걸 가지고 뭐라 하더라고요. 환자분 샤워한다고 30분 뒤에 구급차더러 오라 하면 어떡합니까. 말하면서 화가 나는지 얼굴이 막 시뻘게져서. 솔직히 인상도 좀 별로였어요. 그럼 표정이라도 밝아야 할 텐데, 진짜 멀쩡한 사람도 심장마비 오겠더라고요. 어쨌든 30분 뒤에 오라고 말하긴 했지만 제가 한 십 분 늦게 나왔거든요. 솔직히 며칠 입원 할 생각으로 가는 건데 샤워하고 이것저것 챙기고 하다 보면 늦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나? 맞네. 그래서 그런 거네. 제가 아는 사람도 소방관인데 사실 소방관들 출동 없으면 대기실에서 쉰데요. 게임하고 만화책 보고 고참들은 주식하느라 정신없고. 저희 집 출동 나온 소방관도 나이가 좀 있어 보이더라고요. 빨리 대기실 가서 놀아야 되는데 제가 시간 뺏은 게 못마땅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태원 같은 일도 생긴 거 아닐까요? 기본적인 봉사 정신이 없으니 큰일이 터졌을 때 제대로 수습을 못하는 거죠.


 오늘 소방서에 민원을 걸려구요.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제가 기분 나쁜 건 둘째치고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안 되니까요. 제가 아는 분들이 저 같은 일을 겪는다고 상상만 해도 무섭더라고요. 그리고 잘못한 걸 알고 고치면 소방관들도 발전을 하는 거니까 결국엔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 건데 다른 소방관 분들이 다 저렇진 않아요. 대부분 친절하시고 자기감정 함부로 드러내고 하시지 않았어요. 제가 다 경험해 본 거예요. 쓰다 보니 글이 두서없이 길어졌네요. 아무튼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모든 마음 따뜻한 님들과 대한민국 소방관분들 파이팅입니다!




 지난 8월, 샤워해야 하니 30분 뒤에 구급차를 보내달라고 말한 환자를 친절하게 응대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구급대원이 징계를 받은 사건을 재구성하여 쓴 글임. 해당 구급대원이 소속된 소방본부는 구급대원이 불필요한 민원을 야기하였다는 이유로 당해 포상 인원에서 본 대원을 제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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