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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Dec 04. 2023

히치하이커

 차는 보이지 않았다. 중앙선이 볕에 녹아 희미해진 이차선 도로 위로 바람을 탄 낙엽만 자전거처럼 내달렸다.  마을 입구엔 야트막한 동산이 하나 있었다. 벌거벗어 깡마른 몸뚱이만 남은 잡목들이 그 위에 이쑤시개처럼 꽂혀 있었다. 입구 우측으론 칠이 다 벗겨져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버스 정류장 표지가 덩그러니 서 있고 그 아래 동화 속 난쟁이들처럼 알록달록한 점퍼를 걸친 할머니 두 분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구급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차가 멈췄다.

 안녕하세요, 신고하셨어요?

 아뇨.

 신고하신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럼 차를 왜 세우셨어요.

 면사무소까지만 데려다줘요.

 아유, 할머니 저희 지금 출동 중이에요.

 면사무소까지만 데려다줘요.

 안 돼요. 죄송해요.

 내 차를 타고 가는 거였으면 멈췄겠지만 구급차였다. 더군다나 요로결석이 왔는지 옆구리가 터질 것 같다며 신고한 환자를 데리러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면사무소에 들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마을 안쪽으로 뻗은 비포장 도로를 따라 오분쯤 더 들어가자 목적지가 나왔다. 환자는 옆구리를 움켜쥐고 집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마당에 차가 세워져 있었다. 아파서 운전을 못 하겠어서 불렀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미안하다는 듯 주워섬겼다. 마을은 하루에 겨우 버스 몇 대만 다니는 데다 콜택시를 부른다면 콜비만 만 원을 받아야 수지가 맞을 만큼 외진 곳에 있었다. 돈이 들어도 택시를 타는 게 양심적이지 않나요?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양심은 조금 접어두고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게 요즘의 시대정신인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구급차에 실었다. 근처에 우사가 있어서 잠깐 문을 여닫았다고 구급차 처치실에 소똥냄새가 그득 이었다. 창문을 열었다. 새 먹으라고 따지 않고 남겨둔 열매 서너 개가 매달린 감나무를 지났다. 제 주인에게 밥값 하는 중이라며 호소하듯 구급차를 향해 짖어대지만 실은 사람 손이 그리워 불이 나게 꼬릴 휘젓는 시커먼 개도 지났다. 길 가운데를 세 발로 산책하는 노인도 지났다. 노인은 한 번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멈춘 듯 움직이는 듯 길가 풀섶으로 자릴 옮기며 구급차에게 길을 내줬다. 다시 마을 입구로 나왔다. 예의 할머니 두 분이 여전히 버스 정류장 아래 쪼그려 앉아 수다를 떨고 계셨다. 어둡거나 쓸쓸해 보이진 않았다. 그건 12월 치고는 날이 따뜻하고 할머니들이 오랜 바람을 견뎌낸 고목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글렀어. 안 세워줄 거야.


 20대의 나는 동갑내기 고등학교 동창과 여행 중이다. 월드컵은 4강 신화를 이루었지만 수능은 망했고 그래서 홧김에 떠난 여행이다. 도보와 히치하이킹 만으로 땅끝마을까지 가겠노라 큰소리를 쳤다. 어찌어찌 여정의 절반까지는 도달했는데 이후로 차가 잡히지 않는다. 비상용으로 가져온 초코바와 콜라도 바닥나고 며칠 씻지도 못한 데다 수염까지 마구잡이로 자란 꼴이 영락없는 전쟁 난민이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자동인형처럼 손을 들어 보지만 우웅 쌔앵, 우우웅 씨이잉 스쳐갈 뿐  햇볕에 시커멓게 그을린 다 큰 남자 둘을 선뜻 차에 실어주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저 뒤에서 또 우웅 공기를 몰고 오는 차 소리에 손을 든다. 내가 손을 들었는가 친구가 손을 들었는가 알 수 없다. 글렀어. 안 세워줄 거야. 말하는 게 나인가 친구인가도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인지도 모른다. 그때 터터터터 푸르륵하며 거지꼴의 우리 옆에 그 차가 멈춰 선다. 범퍼 여기저기가 우그러진 빨간색 코란도. 운전석 창문이 열리고 장발에 콧수염을 아무렇게나 기른 남자가 뒤에 타라고 두어 번 고갯짓을 한다. 쭈뼛쭈뼛 뒷좌석에 타는 우리에게 남자가 미지근한 캔커피 두 개를 휙 던진다. 남자가 행선지를 묻고, 고개를 끄덕이고, 차가 출발한다. 갑자기 시험을 망친 건 아무래도 좋고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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