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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Dec 06. 2023

나의 메멘토(Memento)

 신고자는 사이렌을 끄고 조용히 와 달라고 말했다. 기분이 좋지 않다. 시끄럽게 굴지 말라는 그 말이 카라멜 마끼아또에 시럽은 세 번, 휘핑은 거품의 모가지가 부러질 만큼 담아 달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런 눈치까지 보면서 출동을 나가야 하나 싶지만 마음 한 편으론 또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란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염치없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구급차를 부르는 이들은 대개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 조용히 와 달라는 말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자해를 한 사람이나 자살기도 중인 사람과 함께 있는 이들이 보통 그런 식으로 신고를 했다. 사이렌 소리가 환자 혹은 본인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화도 좀 누그러진다. 엘리베이터에 들것을 싣고 올라간다. 14층. 출입문은 열려있다. 계세요. 119입니다. 말하며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잔뜩 긴장한 표정의 남자가 맨발로 나온다. 남자는 몸집이 작고 위로 째진 눈에 삐죽 솟은 코와 가느다란 입술이 얼굴 가운데로 몰려 있어 꼭 쥐가 발톱을 먹고 사람이 된 것 같은 인상이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남자가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우릴 거실로 안내한다. 거실 식탁엔 남자의 아내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A4 용지에 수성 사인펜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써 갈기고 있다. 내용을 흘긋 본다. 얘들아 엄마는 이렇게는 살 수가 없어. 심장이 아파. 죽을병인 게 분명해. 심근경색이야. 종이 위에 사인펜 스치는 소리 빼면 온통 정적인 그 집에서는 왠지 성대를 울리며 목소리를 내선 안될 것 같다. 그래서 겨우 입술 사이로 바람만 내보내는 소리로 묻는다. 어머니, 어디가 불편하세요. 묻자마자 쓱쓱쓱쓱 또 써 갈긴다. 나는 공황장애가 있어요. 가슴이 너무 뛰어요. 나는 여자의 생체징후를 측정하며 말한다. 그럼 저희랑 병원 가시죠.

 병원은 싫어요. 여자가 종이에 적는다.

 여기서 해드릴 수 있는 게 더 없어요.

 병원에서 제 가슴을 만졌어요. 검사하는 사람이. 옷도 막 들추고. 여자가 날아가는 글씨로 종이에 쓴다.

 그럼 다른 병원에 가시겠어요.

 병원은 싫어요. 여자가 종이에 적는다. 그리고 함께 출동한 여자 구급대원의 손을 덥석 잡는다. 나는 이 언니만 있으면 돼요. 남은 손으로 끄적인다. 나는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한다. 시내에 구급차가 없으니 잠시만 환자를 진정시키고 오란 답이 돌아온다. 그 잠시가 얼만큼인지는 네가 결정하란 소리처럼 들려서 막막하다. 거실 식탁에선 여전히 한 사람은 말로 다른 한 사람은 글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가만 보니 아줌마가 내 아내를 닮았다. 둘째 낳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내. 아내는 내 눈을 보고 채 오 분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앞에서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고 이야기할 때마다 깨끗이 양치를 해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신에 노랑, 분홍, 파란색 포스트잇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온 사방에 붙여 놓는다. 침묵하는 하나님에게 구원해 달라 부탁하는 이야기가 가장 많고 자기는 자신감 넘치고 아름다운 여자란 이야기가 그만큼 또 많다. 아내는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메모가 점점 늘어가지만 나는 그래선 안 될 것 같아서 그녀에게 끊임없이 말을 붙인다. 당신은 다시 메모지를 들어 무언가를 끼적이려고 한다.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더 가까이 간다. 허리와 어깨를 감싼다. 이러면 당신을 괴롭히는 메모의 망령도 힘을 쓰지 못한다. 당신의 팔을 내가 온통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을 안고 있다. 그러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던 메모들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 거울에, 냉장고에, 부엌 찬장의 메모들이 사라진다. 알록달록한 메모로 치장하고 있던 아내의 심장이 드러난다. 유리알 같은 그건 깨끗하면서도 부서질 듯 위태롭다. 저흰 이제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아주머니는 못내 아쉬운 듯 여자 구급대원의 손을 꼭 쥔다. 갑자기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 현관으로 가서 도어록을 해제하려는데 쥐 같은 남자가 부리나케 다가와 앞장선다. 이게 잘못하면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요. 멋쩍은 얼굴로 말한다. 목울대를 울리지 않는 바람이 새는 것 같은 목소리다. 스륵 하고 자물쇠가 돌아가는 소리에 남자가 움찔한다. 나도 덩달아 움찔한다. 감사합니다. 남자가 말한다. 문이 열리고, 뒤에서 닫힌다. 나는 물에 빠졌다 건져진 사람처럼 크게 숨을 쉰다. 한 십 초쯤 들이마시고,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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