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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Dec 07. 2023

소방관 야고보

 나는 소방관이다. 평소엔 구급대원이지만 오늘 새벽엔 불을 끄러 나왔다. 사람이 부족한 외곽센터라 큰 불이 나면 진압대 구급대 구분 없이 다 나간다. 그래서 구급차를 타고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다. 구급차는 덩치가 작지만 빨라서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감귤농장을 하는 집이었는데 주택 옆 창고에 불이 붙었다. 집 안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노부부를 먼저 대피시켰다. 그즈음 펌프차가 도착했다. 다른 동료들처럼 나도 안전모를 쓰고 관창을 잡았다. 관창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자 불길이 진저리를 치며 사그라들었다. 불을 끄는 것만큼 세상에서 가슴 뛰는 일이 없다고, 불난 집을 앞에 두고 할 소린 아니라 속으로만 생각했다. 바깥의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고 난 뒤 창고 안으로 진입했다. 물을 피해 숨은 불이 건물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벽체의 틈과 천정 안쪽까지 샅샅이 살피며 불을 잡았다. 급한 고비를 넘기자 갑자기 긴장이 풀어지면서 배가 고팠다. 따뜻한 라면 생각이 났다. 불을 다 끄면 센터로 돌아가서 우선 펌프차에 물을 채우고,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고, 아니 그전에 전기 포트에 물부터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동료들과 함께 인원수대로 컵라면 용기를 뜯어 물을 붓고, 혹시나 또 출동이 걸릴 수도 있으니 라면이 아예 푹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절반쯤 익었을 때 나머지를 익히며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눈을 떴을 때는 곁에 아무것도 없었다. 현장에 함께 있던 동료들도, 구급차와 펌프차도 보이지 않았다. 불타오르던 창고도 자취를 감췄다. 다들 어디 계세요. 외쳤지만 말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이곳은, 아니, 나는 고요하다. 돌이켜보면 이렇게 평화로운 것도 오랜만이다. 요 몇 년은 정신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땄고 병원에서 경력을 쌓는 동안 시험을 준비해서 곧장 소방관이 되었다. 적응한다고 또 몇 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서른 살이 코 앞이었다. 내가 서른이라니. 12월 한 달만 지나면 계란 한 판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야겠다. 빨리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하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 공무원 월급이 빠듯하지만 호봉이 오를수록 형편이 나아지는 건 위로가 된다. 술자리도 줄이고 사고 싶은 거 좀 참고 하다 보면 돈은 조금씩 모일 것이다. 엄마 환갑에 여행은 보내드려야 하니까 그 돈은 남겨 두고. 아아,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인데 나는 또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있다. 걱정을 하니 또 배가 고프다.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냄새를 쫓아간 곳엔 소방서 식당이 있다. 매일 밥을 먹는 그곳이다. 새벽 출동을 다녀온 뒤라 밖이 한참 어두워야 할 텐데 창문으로 빛이 쏟아지고 있다. 태어나서 만난 빛 중에 가장 밝고 따뜻한 빛이다. 동료들이 식탁에 앉아 내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리고 있다. 다들 언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는지 깨끗하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엔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컵라면이 놓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말하며 드디어 라면을 입에 넣는다. 불 끈 뒤의 라면만큼 훌륭한 맛은 세상에 없다.






 故 임성철(야고보) 소방장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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