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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Nov 26. 2023

3일의 층간 소음

 아랫집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아마 상대방도 마찬가지였겠지.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오고 며칠 뒤,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술에 취해 떠드는 소리와 아이들의 발 구르는 소리가 들려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이 있었다. 아래층에서 위층으로도 소음이 타고 올라올 수도 있단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러운 게 나는 이날 최대한 기분 나쁜 티를 내려고 인상을 구기며 아랫집을 찾았다. 현관문이 열리고 얼큰하게 술이 오른 덩치 큰 남자가 나타났다. 손님이 왔는지 어린아이들 여럿이 몰려 우다다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달음박질을 쳤고 거실 중앙엔 어른들 몫의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아랫집 남자는 바로 밑이 필로티라 떠들거나 애들이 조금 뛰어도 괜찮으리라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또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최대한 기분 좋게 마무리를 하려고 했는데 애초에 화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내가 면박을 준 모양새가 되었다.


 어느 날은 우리 집의 오래된 보일러 배관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아래층에 누수가 된 일이 있었다. 내가 출근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랫집 여자가 우리 집 인터폰에 대고 빨리 내려와서 보라고, 천정에 얼룩이라도 남으면 어쩔 거냐고 눈을 부라리며 화를 내는 바람에 자기도 지지 않고 가서 보면 되잖아요! 하고 소릴 쳤다는 게 와이프의 설명이었다. 퇴근해서 아랫집을 찾아갔을 때 예의 덩치 큰 남자가 물이 떨어지는 곳 아래에 대야를 받치고 서 있었고 여자는 물이 튀지 않도록 주변 물건들을 치우는 중이었다. 화가 날 만도 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이미 감정싸움을 해버린 뒤라 이 날을 계기로 아랫집과 우리 집의 관계는 더욱더 소원해지고 말았다.


 부모들이야 서로 꺼림칙하더라도 애들끼린 잘 어울렸다. 아랫집 딸과 우리 집 첫째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중인 데다 둘 다 인근의 사립 유치원을 졸업했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에겐 금단의 영역이 되다시피 한 서로의 집을 아이들은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걸 보면서 애들이 어른들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들은 자존심이 상해서, 혹은 손을 내밀었을 때 거절 당하는 게 두려워서 상대방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얼굴을 마주쳐도 모르는 척 서로를 피하게 되었다. 다만 아랫집 남자가 술을 많이 마신 날 어김없이 코 고는 소리가 벽을 타고 우리 집 안방을 울릴 때나 아랫집 딸과 엄마가 잠들기 전에 욕실에서 한바탕 말싸움을 벌일 때 그들이 여전히 잘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미나 할머니 돌아가셨어.


 하굣길에 아이를 기다리던 다른 학부모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미나는 아랫집 딸의 이름이었다. 맞벌이로 바쁜 미나의 부모님 대신 아이의 외할머니는 하루 종일 정성으로 아이를 돌봤다. 내가 새벽에 달리기를 하러 나가는 바로 그 시간에 걸어서 아이의 집으로 출근을 했고 식구들 밥을 차렸고 아이 등교를 마치면 집안일을 하다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저녁밥을 차린 뒤 자기 집으로 퇴근했다. 할머니는 한쪽 다리를 절었고 몸 안 여기저기가 고장 나 퉁퉁 부은 몸을 하고 있었다. 한 번은 머리를 박박 밀고 털모자를 쓴 채로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온 걸 봤는데 항암치료 중이던가 뇌졸중 수술을 했던가 둘 중 하나지 싶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는 내게 미나 할머니는 넘어지는 바람에 흉이 져서 머리를 밀었노라고 아무도 믿지 않을 핑계를 주워섬겼다. 평소처럼 딸자식 식구들 밥을 차려주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저녁에 할머니는 홀로 세상을 떴다.


 3일은 조용했다. 단순히 사람이 집을 비워 조용한 게 아니라 아랫집에서 뭔가가 통째로 뜯어져 나간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윗집이 떠나가라 코를 골고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이 훑고 간 자리에 남은 고요가 너무 시끄러워서 도통 잠이 잘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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