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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Dec 01. 2023

자식 자랑 좀 할게요

 아빠 나 오늘 받아쓰기 몇 점 받았게?

 글쎄. 한 삼십 점?

 아니야.

 사십?

 아냐. 육십 점!


 육십 점짜리 시험지를 자랑스레 흔드는 첫째를 보고 있자니 오래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고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 기간이었을 것이다. 한참 공부를 잘하던 시기였는데 국어인지 수학인지 기억도 안 나는 무슨 시험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한 문항을 틀렸다. 25문항에 100점이었으니까 96점이었던 셈이다. 교실을 나와 친구들과 평소처럼 웃고 떠들다 교문 앞에 차를 몰고 마중 온 엄마를 발견했다. 잘 가. 쿨하게 친구들에게 인사하고는 차에 타서 조수석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펑펑 울었다. 정말이다. 96점이라서 울었다.


 중학교 이후로 나를 보지 못한 친구들은 그래서 어쩌다 우연히 마주치면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잘 지냈어? 이게 얼마 만이야.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하고 정말 궁금한 걸 묻는다. 지금 어디 있어? 뭔 일해? 그러면 나는 저기 쭈꾸미집 앞 회사에서 일해. 봉사 단체 같은 거야. 하고 답한다. 소방서 앞에 유명한 쭈꾸미 집이 있는 것도 맞고 봉사 단체인 것도 맞으니 거짓말을 한 건 아닌 셈이다. 이제 친구는 태연한 표정 속에 미미한 조소를 머금은 채 그래, 연락해. 말하며 내 전화번호도 묻지 않고 자리를 뜬다. 그러면 나는 그 친구가 그렇게 스쳐 지나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엄마, 나 육십 점이야!


 첫째는 엄마에게도 자랑한다. 육십 점이라는 게 어째서 자랑스러운지 추론을 해 보자면 이제 겨우 100까지 틀리지 않고 수를 세기 시작한 자신의 기준에 60이면 상당히 큰 숫자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하게 50을 넘겼으니 반타작은 면했기 때문에 마치 등산을 하는 사람이 고개를 넘으면 천천히 하산할 일만 남는 것처럼 느긋한 마음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확한 건 알 수 없으나 언젠가 90점을 넘긴 시험지라도 받아 들면 아이는 어마어마한 고양감에 어깨가 있는 대로 솟아서 숫자 90이 적힌 시험지를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다 일어나서 불을 켜고 또 볼 것이다. 그건 좋은 일이다. 자신을 대견하게 여긴다는 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니까. 생각을 하는데 첫째가 가방에서 또 무얼 꺼낸다. 담임 선생님이 자기의 장래희망을 적어오라고 숙제로 나눠준 쪽지다.


 내 꿈은 OOO입니다.

 OOO 싶습니다.

 OOO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빈칸이 있는 쪽지를 아이는 벌써 삐뚤삐뚤한 글씨로 채워 왔다. 숙제지만 이미 생각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 이파리가 퍼렇게 돋아나는데 쓰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이 아침에 내가 너를 떠올리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내 꿈은 여행자입니다.

 여러 나라에(의) 만(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나의 도움으로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나는 사람은 본래 너의 꿈처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시간이 지나 네가 96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오열하지 않길, 쭈꾸미집 앞 작은 봉사단체에서 일한다는 사실도 자신 있게 말하길, 그리고 그걸 비웃는 사람들에게 지금처럼 당당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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