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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Dec 02. 2023

내 딸이었으면

 서울에 콘서트를 보러 간 딸이 하루가 지나도 귀가하지 않았다. 어젯밤 8시쯤 처음 전화를 했고, 새벽 1시에 다시 전화를 했다. 전화를 했다기 보단 싸웠다. 화가 난 딸은 그 이후로 연락을 받지 않았고 지금은 하루가 지난 오후 5시다. 만으로 열네 살이면 요즘 애들은 알 거 다 알고 우리 때완 다르게 몸도 커져서 어른이나 다름없다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유리 같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탁한 화장을 덧대는 걸 볼 적마다 속이 터진다. 가만있어도 어른이 되는 걸 굳이 서두르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영하를 넘나드는 날씨에 딸은 짧은 치마와 팔이 잘린 패딩 차림으로 나갔다.


 경찰에 신고를 했다. 어제 새벽에 딸은 엄마 때문에 죽어버릴 거라고 악을 썼다. 아이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약도 먹는다. 하도 죽는다고 얘길 해서 이제 익숙하다 못해 지겹지만 그 말이 주는 두려움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엄마 때문에 죽을 거라고 말할 때마다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날그날의 상황에 따라 장면이 변했다. 커터날로 손목을 긋고 욕조에 누워 있는 아이, 우리가 사는 아파트 32층에서 뛰어내리는 아이, 오늘은 짧은 치마와 팔 잘린 패딩을 입고 살얼음이 낀 강물에 몸을 던지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상상이 덧대지며 진하게 캔버스를 덮은 유화처럼 죽음이 또렷해졌다. 내 딸. 사랑하는 내 딸. 우리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나는 언제부터 너를 죽음으로 내모는 엄마였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경찰과 함께 출동한 소방관이라고 했다. 내 전화를 받지 않던 아이는 소방관의 전화를 받고 자기가 있는 장소를 이야기했다. 아이는 이미 우리 아파트 건물로 돌아와 있었다. 시니어스클럽으로 통하는 로비 구석자리에서 밤을 새웠다고 했지만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로비로 내려가보니 경찰관, 소방관, 입구의 유리문 바로 옆에 몸을 기대고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딸이 보였다. 딸은 나는 물론이고 그곳에 있던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핸드폰 자판을 두드리며 웃고 있었다. 친구와 연락이라도 하는 거겠지. 야, 여기 소방관이랑 경찰관이랑 다 있어. 저 경찰 잘생겼다, 번호 달라고 할까? 우리 아줌마 지금 아무 말도 못 해. 나만 노려보고 있어. 저러다 집에 가면 또 지랄하겠지? 그런데 존나 추워 여기. 빨리 끝내고 가지 배고파 죽겠네. 아, 인생. 핸드폰을 사주는 게 아니었는데. 저 손바닥 만한 물건 뒤에 얼마나 숨을 공간이 많은지 진작에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데. 화장실 변기 위에서 밥상머리까지 귀신처럼 쫓아오는 저건 이제 딸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엄마가 죽는 것보다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게 더 슬프지 않을까.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자판을 두드리며 웃고 있는 딸에게 말했다. 집에 가자. 딸은 내 뒤로 세 발자국쯤 떨어져 걸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고 우린 같은 공간에 갇혔다. 계기판의 숫자가 1부터 32까지 늘어나는 시간이 짧은 것 같기도, 긴 것 같기도 했다. 다시 문이 열렸다. 딸이 먼저 나갔다. 아이는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현관문 도어록에 엄지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문이 열리고, 뒤따라 가는 내 앞에서 쿵,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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