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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Dec 11. 2023

콩트 맛집에서 일합니다

#1 계산기


 아프면 119에 신고를 해야지. 나 올 때까지 기다리면 어떡해. 아들이 말한다.

 했어. 그런데 전활 안 받아. 엄마가 말한다.

 119가 전활 안 받아?

 응.

 아들이 노모의 손에 전화기를 쥐어준다. 다시 한번 걸어 봐. 노모는 전화기를 들어 몇 번 자판을 누르는가 싶더니 아들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준다. 이렇게 했는데도 전활 안 받아. 아들이 한 손으로 쓰고 있던 안경을 집어 벗어진 이마 위에 걸친다.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본다.

 에헤이, 엄마.

 응.

 이거 계산기(app)잖아.



#2 소화기


 B 상가 근처에서 화재 신고가 접수되었다. 가로수 아래 낙엽을 담은 쓰레기봉투에 불이 붙은 상황이었다. 누가 담배꽁초를 버리고 간 것 같았다. 다행히 지나가던 행인이 화재 현장 바로 옆 가게에 비치되어 있던 소화기로 불을 잡았다. 서둘렀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면 바로 그 가게부터 불길에 잡아먹힐 뻔했다. 행인의 빠른 판단 덕에 불은 큰 피해 없이 진화되었다. 소방서로 귀소하고 잠시 뒤, 사무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예. 아, 네. 정말요? 네, 창고에 남는 거 있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통화를 마친 동료에게 물었다.

 아까 소화기로 불 끈 사람인데, 가게 주인이 소화기 물어내라고 했데.

 


#3 집으로 가자


 비가 내렸다. 비 오는 날은 화재도 구급출동도 많지 않아서 마음을 놓고 있었다. 모처럼의 평화. 라면물이라도 올려야 할까 고민하는데 끼이익 소릴 내며 사무실 문이 열렸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문을 열고 들어온 저 낯선 남자를 아는 사람이 있는가 서로 눈으로 물었다.

 어쩐 일이세요. 누군가 말했다.

 내가 저기 고개 넘어 사는데. 남자가 말했다. 술기운이 돌아서 얼굴이 시뻘겠다.

 예.

 집에 좀 데려다줘.

 어르신, 택시를 부르셔야죠. 저흰 집엔 못 데려다 드려요.

 에이, 그러지 말고 데려다줘어.

 어르신.

 집으로 가자아!

 결국 남자 넷이 달라붙어 술 취한 노인을 사무실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택시가 올 때까지 말동무를 해주었다. 노인은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4 알아서 잘하겠지


 33개월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신고가 들어왔다. 부모가 운전할 상황이 아닌가. 택시가 잡히지 않는가. 아이가 아픈 상황엔 보통 구급차를 부르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출동을 나갔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집 앞 길가에 나와 있었다. 아이 아빠도 곁에 있었다. 엄마와 아이가 구급차에 올랐다. 아빠는 차에 타지 않았다.

 저는 제 차 몰고 쫓아가겠습니다. 아이 아빠가 말했다.

 네, 그러세요.

 무엇이 아픈 아이를 위한 최선인지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뭐, 알아서 잘하겠지.



#5 죄인


 밤거리. 술기운을 못 이겨 보도 위에 구토를 하는 여학생 곁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아주머니 둘, 아저씨 한 사람이었다.

 왔네, 왔어. 뭘 이렇게 늦어. 셋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저희 왔으니까 이제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여학생의 팔에 혈압계 커프를 두르며 말했다.

 안 되지.

 그래, 안 될 말이지.

 우리가 구급차에 잘 실어가는지 지켜볼 거야. 짜기라도 한 것처럼 세 사람이 연거푸 말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래.

 뭔 일이 생길 줄 알고.

 그럼.


 학생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비척거리던 학생은 구급차에서 내리자마자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저희 아빠가 보면 안 되는데. 이제 가시면 안 돼요?

 그건 어렵고, 문 여는 것까지만 볼게요.

 네.

 학생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학생은 내리고, 나는 엘리베이터에 남아 학생을 지켜보기로 했다. 도어록을 누르는 학생의 손이 벌벌 떨렸다. 집 문이 열렸다. 학생이 문 밖으로 한 팔을 내고 손을 흔들었다. 나도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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