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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14. 2024

커튼콜

복도식 아파트. 구경꾼들. 길 가다 쓰러진 사람에게 시민들이 심폐소생술을 한 덕에 귀중한 생명을 구했노라, 그런 반전은 여기 없었다. 그건 TV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 내게 손짓하며 말했다. “저 쪽이에요.” 나는 무대에 올랐다. 뻔한 무대. 내러티브도, 반전도 없는 무대.


화단에는 기괴한 모양으로 뒤틀린 사람이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다. 이마가 움푹 들어가고 입술은 턱 아래까지 찢어져 있었다. 기저골(뇌를 받치는 머리 안쪽 뼈)이 무너졌는지 가슴을 압박할 때마다 입과 코와 귀에서 희부연 핏물이 흘러나왔다. 신규로 임용된 소방관이 벙찐 얼굴로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못 하겠어요.” 소방관이 그런 걸 무서워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무섭다. 적어도 나는 무섭다. 겨우 발 디딜 공간만 있는 조각배 위에서 가시가 잔뜩 돋친 활어를 맨손으로 잡는 기분이다. 고백하자면 내가 가망 없는 시신에 달려드는 까닭은 용감해서가 아니다. 나는 쫄보에, 울보에, 이젠 나이까지 먹었다. 그래도 하는 까닭은 다만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병원에 시신을 인계했다. 응급실 당직의는 시신을 보자마자 한숨을 쉬고 의미 없는 소생술을 십여 분쯤 하다가 사망을 선고했다. 이제 커튼콜이다. 나는 관객 없는 객석에 대고 말없이 고개만 숙인다. 무대에서 내려간다. 박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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