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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13. 2024

딸에게

딸, 요샌 좀 어때?


전에 보니까 너무 말랐더라. 신랑이 잘 못하나. 애들이야 널 닮았으니 걱정 없는데, 하여간 남자들이 문제야. 나도 남자지만 여자 맘을 몰라요. 그런 거 아니라고? 뭐 어때. 난 일단 내 딸을 데려간 그놈한테 화가 나. 아빠 맘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여긴 밤에 비가 많이 왔어. 덕분에 아빤 출동이 많지 않았어. 우리끼린 유비무환이라고 하거든. ‘비 오면? 환자가 없다.’ 아재개그라고? 미안. 아빤 이제 누가 뭐래도 아저씨야. 네가 태어날 때만 해도 영영 젊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사실 그래서 더 열심히 쓰고 있어. 언젠가 내가 없으면 네가 내 목소릴 듣고 싶을까 봐. 갑자기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고. 아빠 일이란 게 그렇잖아.


거기도 비가 오니? 그럼 한시름 놨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우울할 땐 햇살이 위로가 되지 않거든. 지금 네 마음처럼 세상이 짙은 콘크리트 색으로 젖길. 빗줄기 위 또 다른 빗줄기가 너와 세상의 경계를 지워주길. 그래서 다시 태양이 떴을 때 너와 세상이 함께 피어나길 바라.


사랑해, 내 딸.

네가 있는 곳에 내가 있든 없든

지금의 난 영원히 널 사랑할 거야.


2024년 7월 7일


30년 뒤의 너에게,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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