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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15. 2024

수박

“천천히 와요. 괜찮어.”


“톱에 다치셨다면서요.”


“피는 많이 안 나.”


“전기톱 아녜요?”


“으응. 그런데. 피는 많이 안 나.”


“빨리 갈게요.”


나무 자르다가 톱에 다쳤다는 신고였다. 현장에는 담장 너머로 기우뚱하게 자란 오래된 살구나무와 그 아래 가지를 잘라낸 흔적들이 있었다. 팔이 닫는 아래쪽은 바짝 자르고, 위쪽은 무성해서 꼭 소질 없는 미용사가 공들여 자른 머리 같았다. 할아버지는 지저분한 손수건을 한쪽 얼굴에 대고 있었다. 한 팔엔 수건을 대고 상처 위쪽으로 지혈을 한답시고 나일론 줄을 팽팽하게 묶어 놓은 모양이었다.


줄을 잘라내고 얼굴과 위팔의 상처를 살폈다. 톱날이 뺨을 스쳤는지 피부가 벗겨져 너덜거렸고, 팔의 상처는 깊어서 피부와 지방층을 뚫고 근육까지 닿아 있었다. 할아버지 말대로 피는 많이 나지 않았다. 큰 혈관을 비껴간 게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생리식염수를 부어 상처를 세척하고 너무 조이지 않도록 상처 위로 압박 붕대를 감았다. 으이그, 으이그, 자알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할머니가 혀를 찾다. 할아버지는 구멍 난 얼굴로 껄껄 웃었다. 그건 염려고, 미안함이었다. 평생을 붙어산 부부는 그렇게 서로에게 마음을 전했다. 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침에 출근했는데 사무실 테이블에 수박 네 통이 놓여 있었다. 웬 수박이냐고 물으니 어떤 할아버지가 가져온 것이라 했다. 한 달 전에 팔을 다쳐서 구급차 신세를 졌노라고, 그때 너무 친절하게 잘해주셨노라 말씀하셨다고 했다. 붕대 감고 병원 모셔다 드린 것 밖에 없는데. 가끔은 이렇게 품삯이 너무 후해서 민망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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