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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17. 2024

슬픈 쌀국수

남편에게 맞았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지령 주소는 시 외곽의 시골 마을이었다. 비슷한 출동을 하도 많이 나가서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편견이 생겼다. 그리고 그 편견은 대부분 들어맞았다. 남편, 폭력, 시골 마을의 중노동. 그걸 억지로 버텨내야 하는 까닭이 있는 게 분명했다. 갈 곳이 없거나. 갈 곳이 없거나. 또는 갈 곳이 없거나.


여자는 젊었다. 가무잡잡한 피부, 큰 눈, 팔다리는 여리여리해서 식탁 의자에 앉아 얻어맞은 팔다리를 주무르는 모양이 꼭 사슴 같았다. 지금 제일 불편한 게 뭔가요? 묻자, 잘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어디가 아파요? 물으니 그제야 시푸르게 변색된 위팔과 허벅다리, 부어오르기 시작한 왼 뺨을 가리켰다. 혈압을 재는데 여자의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구급활동일지에 기록하기 위해 이름을 물었는데 이번엔 내가 못 알아듣겠어서 태블릿 pc를 여자에게 넘겼다. 생소한 영문 이름이 적혔다.

집 밖에서 경찰과 이야기 중인 남편을 지나쳐 여자를 먼저 구급차에 태웠다. 뒤따라오던 시어머니가 내 뒤통수에 대고 중얼거렸다. 망할 년.


아내와 자주 가던 쌀국숫집이 있었다. 시장통에 있는 작은 점포였다. 쌀국수 만 원 시대에 오천 원을 받고 팔았다. 사장님은 한국 남자와 결혼한 베트남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국수를 먹고 싶어 찾아간 날 뜬금없이 가게를 내놓았길래 바로 앞의 신발가게 사장님께 물었더니 다양한 설명을 들려주셨다. 남편이 때렸네, 여자가 고향에 있던 애인을 불러들였네, 맛이 예전만 못했네. 확실한 거예요? 물었더니 자기도 어디서 들은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후로는 쌀국수를 굳이 찾아 먹지 않는다. 거기만큼 맛있는 곳을 찾지도 못했고, 어딘지 슬픈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망할 년. 누군가는 사장님을 또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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