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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25. 2024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장으로 출동을 나갔다. 고인의 손녀로 뵈는 20대 중반의 여자가 빈소에 쓰러져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쓰러질 만큼 슬프다는 게 어떤 거였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나는 뭔가가 망가진 사람이다.


누워 있는 외할머니를 봤을 때 내가 맨 처음 한 일은 할머니의 경동맥에 손가락을 얹은 거였다. 그리고 눈꺼풀을 뒤집어 동공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웃옷을 조금 걷어 몸 아래로 시반이 가라앉은 걸 보고 완전한 사망을 짐작했다. 자발적 연탄가스 중독, 그리고 죽음. 그게 끝이었다. 외할머니쯤 되면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꼭 같았다. 노환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 특이하다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선 다를 게 없었다. 그야말로 매일 보는 풍경이었으니까. 노래 가사는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데, 나는 그냥 눈물이 나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내가 끼적이는 건 그러므로 아픔을 극복하는 글쓰기완 거리가 멀다. 오히려 아픔을 쫓는 행위에 가깝다. 상처를 칼로 헤집어서 ‘내가 이런 걸 느끼고 있구나’, ‘내가 살아있구나’를 느끼기 위해 쓴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경계에서 밥벌이를 하는 일의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쓰러진 여자는 활력징후를 측정하는 동안 기운을 차렸다. 표정은 여전히 슬펐다. 나는 그날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할머니 보시기에 너무 인정머리 없어 뵈진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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