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Jul 26. 2024

해파리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첫째의 태명은 바다였다. 아이가 바다를 닮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무려 아이의 이름이기 때문에 휴가철엔 부러 깨끗한 바다를 찾아 다녔다. 깨진 술병과 다 타서 주검처럼 꽂혀 있는 불꽃놀이가 즐비한 바다가 아닌, 진짜 바다.


올해 찾은 바다는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OO리 주민회에서 할머님과 할아버지들이 주차장과 샤워장 요금을 받는 바다였다. 물빛은 옅은 초록이고, 일렁이는 물결에 수억 개로 쪼개진 태양 아래서 바지락과 소라게가 일광욕을 했다. 아이는 구명조끼를 입고 얕은 물에 몸을 동동 띄운 채로 연신 모래를 헤집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조개가 잡혔다. 비닐백에 담긴 조개를 보며 흐뭇해하고 있을 즈음 저만치 앞쪽에서 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 아이 하나가 발을 절뚝이며 해변으로 걸어 나왔다. 고통 때문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해파리에 쏘인 거였다. 동네 주민으로 뵈는 아저씨 두 분이 뜰채를 들고 바다에 들어갔다. 해파리에 쏘여 봤자지라고 생각했는데 해파리가, 내가 알던 그런 해파리가 아니었다. 뜰채에 딸려 나온 해파리는 웬만한 송아지만 했다. 저기 아래 따뜻한 나라 출신인 것 같은데 이상기온 때문에 입국심사를 엉뚱한 곳에서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이의 부모님은 119를 불렀다가 다리의 붓기가 가라앉자 신고를 취소했다. 병원 데려가서 경과를 지켜보시라 하는 말이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조금 용기를 낼 걸 그랬나. 제복을 벗으면 남에게 말도 잘 못 붙이는 내 소심함에 화가 났다.


삶에 불행이 찾아오는 모습은 그렇다. 거리낄 것 없이 투명한 바다에 난데없이 거대 해파리가 튀어나오는 식이다. 오만한 사람들은 철저한 준비를 통해 불행에 대비할 수 있다 말하고 이미 불행한 사람들에게 자업자득이란 꼬리표를 붙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개는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고, 불구가 되고, 파산하고, 죽음을 맞는다. 불행을 제 손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손을 잘라낸 뒤에야 불행이 통제불능의 패혈증이었을 깨닫는다.


해파리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여지껏 불행에 쏘이지 않은 건 그냥 재수가 좋았기 때문이다. 나도 언제든 불행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불행한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기보단 그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게 옳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자전과 이방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