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말이 나왔다. 함께 산 지 10년이 되었는데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는 말. 하지 말라고 해도 이따금 튀어나오는 말. 나는 그 말을 지우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했지만 그건 여전히 어스름 망령처럼 남아있다. 당신은 말한다. 나는 내가 너무 싫노라고. 그러면 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널 네가 싫어하면 어떡하냐고 답한다. 이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등장할 차례다. 당신 입에서 그 말이 나온다. ‘애들 있어서 억지로 날 사랑하는 거잖아.’
내 아내 포함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건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대상일수록 통제하기가 쉬우리란 생각이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다. 직장 동료, 대학 과제 팀원, 어쩌다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은 규칙이나 공유하는 목적을 통해 통제가 가능하지만 친구, 연인, 부모, 자식, 아내처럼 존재 자체가 내 자아의 일부인 사람들은 오히려 통제가 어렵다(통제가 가능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통제의 결과로 관계가 파멸에 이른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을 적용하면 가장 통제가 어려운 대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내 마음이다.
마음은 계량할 수 없다. 애정 한 컵, 집착 반 스푼, 노력 세 스푼 하는 식으로 빵 만들듯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물며 사랑이야 당신 말마따나 애들 있다고 억지로, 의리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건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랑들이 증명한다. 사랑은 내 안에 파이프를 심어 퍼올리거나, 돈을 주고 사거나, 용을 무찌른 뒤에 전리품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사랑은 원래 거기에 있다. 당신을 만난 순간부터 거기 있고, 덕분에 나는 눈이 멀고 귀가 먹어 지금껏 사랑이 이끄는 대로 산다. 사랑은 스스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