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Aug 10. 2024

모과 향기보다 진한

“엄마한테는 예쁜 냄새나는데, 할머니한테는 맛도 없는 냄새나.”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그리고 내가 많이 어렸을 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할머니 집에서는 늘 메주 띄우는 냄새가 났다. 빨랫비누로 비벼 빤 할머니 옷에서는 흙냄새가, 햇빛 냄새가 났다. 아, 할머니 손 냄새도 있었다. 김치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섞인 냄새. 고무 다라이에 손주가 발가벗고 들어가 있으면 깨끗이 닦은 긴 나무 빨래판에 김밥을 썰어서 다라이 가장자리에 얹어 주시던, 주름 투성이 손에서 나던 냄새.


어제 시골 아부지댁에 애들 데리고 놀러 갔을 때 훌쩍 커버린 모과나무가 눈에 띄었다. 나무는 외할머니가 첫 증손주(우리 첫째)가 태어났을 때 선물한 나무다. 옮겨 심는다고 한 차례, 벌레가 꼬여서 또 한 차례 몸살을 앓았지만 지금은 잘 자라서 매년 가을이면 황금색 열매를 매달고 아찔할 만큼 달콤한 날숨을 내뿜는다. 나무를 보고 있으려니 모과 향기라도 할머니의 향기에 비할까 싶었다. 어릴 땐 왜 몰랐을까. 온 동네 밥 굶는 꼬마들 데려다 배가 미어지도록 밥을 먹인 할머니가, 가난했지만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기꺼이 자기 몫을 내어준 할머니가 나는 왜 맛없는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할머니는 향기 나는 사람이었다. 할머니 반만 쫓아가도 내 삶은 성공한 삶일 것이다. 나도 할머니를 닮고 싶다. 빛나지 않을지언정 향기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