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Sep 03. 2024

1200분의 통화

4년을 썼더니 배터리가 버티질 못해 휴대폰을 바꾸러 갔다. 집 근처 휴대폰 가게 사장님은 같은 자리에서 10년을 일하셨고, 나처럼 딸이 있고, 나이는 나와 비슷하다. 나는 관상학을 그닥 신뢰하지 않지만 사장님은 딱 보기에 좋은 사람이란 느낌이 든다. 아마 맞을 것이다. 10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작은 가게 하나만 지키고 있는 걸 보면 사람만 좋아서 큰돈은 못 번 것 같다. 어제는 아이폰 13(원래 쓰던 건 11) 떨이 치는 게 있다 해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기계만 바꿨다.


전화 개통을 기다리고 있는데 허리가 굽고 눈망울이 또랑또랑한 할머니가 보행기를 끌고 가게로 들어오셨다. 할머니가 말했다. “요금제 더 싼 거 없어? 한 만 원 짜리로다가.“ ”어머님, 그런 거는 못 써요. 전화비 폭탄 맞아요. “ 사장님이 답했다.

“전화 안 쓰면 되지.”

“지난달에 얼마나 쓰셨는지 조회해 볼게요.”

“......”

“...... 어머니.”

“응.”

“전화를 1200분을 쓰셨는데?”

그 말 듣고 혼자 빵 터지면서 나도 모르게 할머님께 한 마디 건넸다. ”어머니, 사장님 말씀대로 하셔요. 2만 9천 원짜리, 통신비 무제한. “

”그냥 싼 걸로 바꿔 줘.”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후회하신다니까.” 웬일인지 나는 영업을 하고 있었다.

“후회 안 해. 전화 안 할 거야.”

계속 고집을 부리셔서 방법이 없었다. 사장님이 말했다. “그럼, 앞으로는 전화 걸자마자 끊으면서 다시 전화 걸라고 말씀하세요. 꼭 그렇게 하세요.” 할머님은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야기하는 동안 사장님은 할머니 휴대전화의 필름을 새 걸로 바꿨는데 할머니는 그걸 눈치채지도 못했고, 사장님은 티를 낼 생각도 않았다. 할머니는 만족스러우신 듯 보행기를 끌고 유유히 가게 밖으로 나가셨다.


“고집 씨시네.” 내가 말했다.

“자기가 얼마나 외로운지 몰라서 그래요.” 사장님이 답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낭만과 고추장과 에딘버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