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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Feb 07. 2023

찔레꽃 당신

그 남자가 설을 보내는 방법, 그 후

  도어록 숫자를 누르는 그녀의 손가락이 쉴 새 없이 떨렸다. 정수리까지 차오른 감정이 사람의 몸을 뒤흔드는 모양은 여전히 낯설었다. 아니, 스스로 낯설게 받아들이려 하는 것 같았다. 긴장을 늦추고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된다. 소방관도 아니게 된다. 그래서 늘 시체를 앞에 둔 까마귀 같은 눈으로 죽음을 보았다.

 

 설 연휴 근무 때 찾았던 그 집이었다. 전 남편을 위해 명절 음식을 싸들고 온 아주머니가 그의 저혈당 증세를 발견하고 신고했던 곳. 번호를 잘못 누르는 바람에 도어록이 한 차례 삐빕 하고 무심한 경고음을 뱉었다. 두 번째 시도 만에 문이 열렸다. 막 살이 썩기 시작한 냄새가 마스크 안쪽을 파고들었다. 아주머니는 문만 열어주고 아파트 복도의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엎드린 채 베갯잇이 다 젖도록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시반이 내려앉아 몸의 밑면이 벌써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제세동기 패치를 남자의 등에 아무렇게나 붙였다. 본래 심장의 전기신호 방향으로 붙여야 하지만 상관없었다. 망자의 심장은 뛰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경찰이 올 거예요. ”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 네. “


“저희가 돌아가신 분은 이송을 못 해드려서요. “


“...... 20년 됐어요. 이혼하고 토요일마다 냉장고에 반찬은 넣어 줬어요. 어제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아서, 안 받는 사람이 아닌데 이상해서 와 보니까...... ” 아주머니는 더 말을 잊지 못했다. 소리 내어 울 법도 한데 끅끅 숨을 죽이고 샘 같은 눈물만 흘렸다. 이혼이 아니라 남자의 물리적인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종말을 맞은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함께한 시간보다 더 오랜 불완전한 이별의 시간 동안 남자의 텅 빈 냉장고를 염려한 그녀의 마음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혹 그것도 사랑이 아니었나 내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가까이 두기엔 견딜 수 없이 아프고, 그래서 멀찍이 아린 심정으로 보듬을 수밖에 없는 하얀 찔레꽃.


 경찰에게 현장을 인계하고 나오는 중에 거실 선반의 가족사진이 눈에 띄었다. 그들 부부와 갓 돌을 넘긴 듯한 딸의 모습이 담겼다. 세 사람의 행복이 오래된 전설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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