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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an 21. 2023

그 남자가 설을 보내는 방법

 출근 전에 아내와 다퉜다. 명절 전날이면 삼십 분 거리의 시댁에 가서 음식 하는 걸 도왔는데, 요번 설 연휴엔 근무가 겹치는 바람에 내가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내는 나 없이 시댁에 가기 싫다고 말했고, 나는 그게 맘에 들지 않았다. 싫은 게 있으면 맘에 묻어두지 말고 이야기하라 했단다. 대꾸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당연히 좋아라 할 만한 상황이 아닌데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영구임대 아파트 단지로 첫 출동을 나갔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코를 골고 잔다는 신고였다. 50대 남성이었다. 혈당이 20 언저리에 수축기 혈압은 200을 웃돌았다. 뇌전증 병력이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머리 아래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보호자 분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전 부인이에요. 하도 죽겠다고 난리를 쳐서 한 번씩 봐요. 명절이라고 음식 좀 가져왔더니...... “


“아......”


 중증의 알코올중독이라 혈관도 잘 잡히지 않았다. 서둘러 이송을 시작했다. 구급차 안에 무겁게 침묵이 깔렸고, 병원 인계를 마칠 때까지 자신을 전 부인이라 밝힌 아주머니와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이거 저 사람 누나 전화번호예요. 제 전화는 받지를 않네요. 대신 좀 해주시겠어요?”


 그러마 하고 대답하자, 아주머니는 말을 맺기가 무섭게 뒤돌아 저 멀리 걸어가 버렸다.




 노부부가 사는 집으로 두 번째 출동을 나갔다. 등이 물음표처럼 굽은 할아버님이 의자에 앉아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옆에는 그보다 두 뼘은 키가 커 보이는 할머님이 서 있었다. 당장 할아버지의 생체징후를 측정했지만 특이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버님, 병원에 모셔다 드릴까요?”하고 묻자, “가야 돼요, 가서 입원해야 할 것 같아요.” 할머님이 대신 대답했다.


“보호자가 함께 계셔야 입원이 가능해요. 할머님도 옷이랑 챙겨서 저희랑 같이 가셔요.”


“제가 근데 병도 있고,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다른 보호자분 계시나요?”


“이게 아들 번혼데, 대신 전화 좀 해주시겠어요? 제 전화는 안 받아서요.”


 사정이 있겠구나 싶어서 그러겠다고 답한 뒤 구급대 전용 전화기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과 달리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해야 해서 아드님이 병원으로 나오셔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저희가 좀 복잡해요. 못 갑니다.”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입원하시려면, 어머님도 지금 상태가...... “


“저희 어머니 아니에요. “


“......”


“죄송합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못 오신답니다.” 노부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는 수 없이 할아버님을 먼저 구급차로 실어 보내고, 할머님이 자가용을 몰고 뒤따르기로 했다. 코시국에 호흡기 관련이라 2시간도 넘게 병원 앞에서 대기했다. 히터를 최대로 틀고 모포까지 덮었지만 할아버님은 대기하는 내내 “추워, 추워.”하고, 내게 말을 걸듯 되뇌었다.


 퇴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아내가 마중을 나왔다. 종일 전을 부쳤는지, 아내의 몸에서 기름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민망함과 미안함에 주워섬길 말을 찾지 못해서 아내의 손을 살짝 그러쥐었다. 다행히 뿌리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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