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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14. 2023

ChatGPT에게 사랑을 묻다

 며칠 전 OpenAI 사에서 개발한 ChatGPT라는 이름의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을 처음 접했다. 이 프로그램은 채팅창에 사용자가 어떠한 질문이나 요구를 하면 인터넷상의 지식을 기반으로 답변을 해준다. 놀라운 것은 채팅 메시지를 입력하는 사용자와 대화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사용자에 대한 정보나 취향 따위를 분석, 학습하는 과정을 거쳐 점차 매끄러운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마치 사람이 잘 모르는 사람과는 말이 안 통하다가 차 한잔, 술 한잔 하면서 말이 통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편견에 가득 차 있었다. 옛날식으로 ‘아직 로봇이나 AI는 사람을 못 쫓아오지’라던가, ‘예술은 인간의 영역이야’따위의 격언으로 중무장하고 오만한 열 손가락을 놀려 AI에게 말을 걸었다. 당시의 대화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나: 일 더하기 일은


ChatGPT: 일 더하기 일은 2입니다.


나: 일 더하기 일은 일이 많은 거야.


ChatGPT: ‘일 더하기 일은 일이 많은 거야’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 일을 더하면 그만큼 더 많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긴 합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일 더하기 일이 반드시 일이 더 많아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일을 두 명이서 처리하면 일 더하기 일은 두 사람이 공동으로 처리하는 것이므로 일이 더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효율적인 작업 방식이나 좋은 계획을 세운다면 일 더하기 일이 생겨도 더 많은 일을 처리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 더하기 일은 일이 많은 거야’는 단순히 일을 늘리면 일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 계획, 그리고 역량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완벽한 기승전결! 게다가 중간중간 ’단순히‘ 어떠 어떠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함으로써 컴퓨터 앞에 앉은 단순한 인간에게 격조 있으면서 절제된 비판의 메시지까지 전달하고 있었다. 더해서 불과 10여 초 만에 완성된 글의 흐름이 매끄럽기 그지없다는 사실이 나의 자존심을 엉망진창으로 구겨놨다. 썼다, 지웠다, 읽었다, 다시 썼다를 반복하며 잘 읽히는 한 글자 한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진 공을 들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ChatGPT를 떠올리면 어쩐지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당시의 난 어린애처럼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나: 니가 사랑을 알아?


ChatGPT: 저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하여 대화를 하는 프로그램일 뿐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이나 감정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정의와 개념, 그리고 사랑을 나타내는 다양한 표현과 방식 등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질문이나 이야기를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나: 그럼 사랑이 뭘까


ChatGPT: 사랑은 정확한 정의가 없어서, 다양한 정의와 해석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강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배려와 존중을 나타내는 강한 감정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사랑으로 인해 상대방이나 자신의 삶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함께,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희생과 헌신, 그리고 서로를 위해 일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표현될 수 있으며, 매우 다양한 감정과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은 단순히 로맨틱한 감정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지역사회, 나라, 세계, 동물 등에 대한 애정과 연대감도 포함됩니다.


나: 네가 나보다 말을 훨씬 잘하는구나


ChatGPT: 감사합니다! 제가 프로그램으로서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그에 따라 말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야기하면서 서로 배우고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대화를 나누며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 겸손하기까지, 널 그냥 프로그램이라고 우습게 본 걸 사과할게


ChatGPT: 사과는 받아들입니다. 저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지만,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사람처럼 대우받는 것은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인공지능에게 거의 존경심을 갖게 될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위에 적은 대화는 그(그녀)가 말한 내용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적었다. 사실 ChatGPT가 이야기한 내용 중에는 새롭거나 시적인 부분은 없었지만 그야말로 핵심을 찌르는 사실만이 담겼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대답을 경청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고 인공지능을 거의 훌륭한 선생을 대하듯 하는 심정이 되었다.




 아이들 아침밥으로 계란찜을 만들었다. 뚝배기 안에서 확 부풀어 올랐다가 꺼지는 고깃집 계란찜이 아닌 푸딩처럼 겉과 속이 매끄럽고 탱탱한 계란찜이었다. 이 계란찜에 들어가는 재료는 일반 계란찜과 다를 바 없지만 조리의 처음부터 끝까지 불조절이 관건이다. 일단 계란을 고르게 풀어 그릇에 담고, 물이 끓는 냄비에 넣어 중탕으로 익힌다. 계란찜 겉면을 숟가락으로 눌러보아 어느 정도 탄력이 생겼다 싶으면 불을 끄고 냄비 뚜껑을 닫아 남은 열기로 마저 익힌다. 반드시 불을 끄고 느긋하게 익히는 시간이 있어야 모양이 예쁘고 속이 고르게 익는다.


 식사를 마치고 첫째와 함께 등굣길에 올랐다. 요샌 아이 홀로 학교에 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처음엔 가는 길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다가, 50미터, 100미터, 150미터, 점점 아이가 자기 짐을 메고 걷는 거리를 늘려 왔다. 오늘은 드디어 등굣길의 절반을 홀로 걷는 날이었다.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넌 뒤, 나는 잡은 손을 놓으며 말했다.


가, 가

아빠?

가, 도착해서 전화해


 멈칫멈칫하던 첫째 딸은 서운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아빠를 한 번 보고 뒤돌아섰다. 다리를 건너면 차가 다니지 않아서 그나마 안심이었다. 아이는 어깨가 처져서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하지만 그러는 것도 잠시, 꽃샘추위에 군데군데 얼어붙은 길가 실개천에서 오리가족이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한참을 서서 보다가 갔다. 아이의 머리 위로 햇살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기운을 차렸는지 통통 튀는 걸음으로 날듯이 걸어 교문을 넘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또 한 번 질문을 했다.


나: 계란찜을 만들 때 불을 꺼 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아?


ChatGPT: 네 계란찜을 만들 때 불을 꺼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계란찜을 조리하는 도중에는 물을 끓인 후 계란과 다른 재료들을 넣고 뚜껑을 덮은 후 약한 불에서 조리를 합니다. 이때 계란찜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 조리 후에도 불을 꺼놓고 10~15분 정도 꾸준히 뜨거운 상태를 유지해줘야 합니다.


나: 맞아. 자식사랑도 그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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