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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15. 2023

중독인간의 숨은 도파민 찾기

 누군가 나더러 왜 그리 술을 퍼먹으면서 끊으려고 애를 쓰느냐 묻는다면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봐? 아니. 아내의 염려가 마음을 움직여서? 아니. 정답은 ‘안 먹으면 우울해서’이다.


 술을 퍼먹으면 행복하다. 안 먹으면 우울하다. 아직 이렇게 퍼먹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같은 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음주 경력이 쌓일수록 확실하게 체감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같은 수준의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술을 퍼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술은 이튿날 배가 된 우울감으로 찾아와 숙취로 그로기가 된 정신에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마약중독자들이 투약 용량을 점차 늘리는 것과 동일한 메커니즘이다.


 우울은 무섭다. 직업 저승사자인 나는 칼로 죽는 사람은 자주 보지 못해도 우울로 죽는 사람은 눈앞에서 하루 건너 한 명씩 보기 때문이다. 아내가 둘째 낳고 우울감에 허덕일 때, 나는 소방서 뒤편 흡연구역에 쪼그리고 앉아서 틈만 나면 집에 전화를 해 댔다. 아직 머리가 크지 않은 애들도 혹시나 우울한 에너지가 내면에 쌓일까 싶어 시간 날 때마다 밖으로 잡아 돌렸다. 어떻게든 내 가족 내 사람들의 우울은 몸을 던져가며 막아왔다고 생각했더니 이번에는 내가 문제다. 아니, 늘 문제였는데 통풍까지 찾아온 김에 술을 좀 줄여보려고 해서 눈앞에 드러난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술을 먹지 않는 날의 나, 그것도 전날의 과도한 음주로 인해 억지로 하루를 금주하게 된 나는 늘 가라앉아 있었고, 어쩐지 삶이 허망한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았다.


 적어놓고 보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더 적나라하다.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지도 모르는 30대 막바지의 별 볼일 없는 남성’이라니. 그 한심한 뉘앙스에 자존심이 상해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알코올중독이며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보인다는 건 아니다. 나 스스로만 그렇다.


 급성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심폐정지는 그 말로가 처참하다. 사실 말이 급성이지 대개는 이미 만성으로 알코올에 시달린 몸이 더는 이승에 붙들려 있지 못하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마치 도심에서 뛰는 구급차가 만 5년 동안 20만 킬로쯤 달리다 퍼지는 것과 비슷하다. 말년까지 알코올이 점령한 육체는 대부분 물컹하고 탄력이 없으며, 소생술을 위해 주사를 찔러 넣을 핏줄도 말라비틀어지고, 누런 흰자위에 거무죽죽한 실핏줄이 동공까지 비집고 들어간 죽은 생선 같은 눈을 하고 있다.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묘사를 해도 소용없다. 술을 안 퍼먹으면 우울하다. 죽은 사람들도 그래서 그렇게 퍼먹다 죽었다는 것을 안다.


 사실 알코올중독을 벗어날 실마리는 있다. 바로 나 스스로 담배를 끊었던 경험을 적용해 보는 것인데, 그때엔 의외로 건강상의 이점이라던가 타인이 나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 재고와 관련하여 금연을 결심하지 않았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30대 초반의 나는 한참 운동에 미쳐 있었다. 몸이 예뻐지는 재미가 좋았고, 힘이 세지는 느낌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한바탕 뛰고 나면 맑은 공기가 허파에 들어차는 느낌이 좋았다. 세포 하나하나에 힘이 붙고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향기, 좋았던 냄새가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의 글에 유독 냄새에 대한 묘사가 많은 건 그래서다. 냄새나 향기에 집착하는 경향은 아마 책도 한 권 낼 수 있을 만큼이지만 쥐스킨트 아저씨가 먼저 대업을 이뤘다. 더 빨리 담배를 끊었어야 했는데.


 그 시절의 나에게 운동이 있다면 지금의 나에겐 글쓰기(브런O라고 하고 싶은데 너무 속보여서 관둔다)가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새벽 네 시부터 정수리를 잡혀 끌려 나오듯 책상 앞에 앉게 만드는, 좋아하는 커피 맛도 텀블러가 텅 빌 때까지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그것. 20년이 넘도록 내 오른 다리를 쥐어짜 온 허리디스크와 종합선물세트처럼 함께한 난독증도 어쩌지 못하는, 나의 숨은 도파민. 선장은 멀었고 일등은커녕 십사등, 십오등 항해사쯤 되겠지만 문자와 문장의 바다 깊숙이 꼭꼭 숨은 보물을 찾다 보면 당연한 듯 퍼마셨던 술도 분명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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