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하사색 May 10. 2022

내가 맥주를 좋아하는 이유

스무살 초반의 그 시절 친구들이 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맥주를 마셨던 날은 아마도 고등학교 3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날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에 미리 취업을 했기 때문에 그 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지는 않았지만 퇴근 후 시험을 끝낸 친구들을 만나서 호기롭게 맥주를 마시다가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있다.

  뭐 술자리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나와 기나긴 시간을 함께 하며 술을 마셨던 친구라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자랑할 만한 이야기가 아닌 젊은 날의 치기로 가득했기에 일일이 열거하며 적어내지는 못하겠다.

  단지 스무 살 그 어린 시절, 딱히 술맛을 알고 먹었다기보다는 친구들을 만나 누가 주량이 세며 끝까지 취하지 않고 버티는 게 누군지 내기를 하듯 마셔댔고 주량도 모르고 자제력도 없었던 스무 살 초반에는 자주, 그리고 많이 취했던 것 같다.

  그래도 되돌아보면 그 시절 고등학교 친구들과 마셨던 술자리가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입학해서 열심히 즐겼던 나의 대학 생활 - 대학교 입학 OT(오리엔테이션)부터 시작해서 MT(멤버십 트레이닝)까지, 아니 날마다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 마시던 대학시절의 술자리.

  맥주, 소주, 레몬소주, 막걸리 심지어 위스키까지, 소주와 맥주를 조합해서 만든 소맥과 소주와 콜라를 조합해서 만든 소콜까지 다양한 주류를 경험해 보니 내가 딱히 주량이 센 사람이 아닌 걸 알게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 후로는 그나마 알콜 도수가 약한(?) 맥주를 고집하게 됐다.

  술자리에서 복학생들과 어울려 마시고 난 다음 날 빠른 년생인 나 때문에 남자들 사이에 서열이 꼬여서 한참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군대를 제대해 복학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같은 년생이랑도 친구하기로 하고, 같은 연도에 졸업한 한 살 많은 친구하고도 친구가 되고 어쩌다 보니 한 살 더 많은 친구하고도 친구가 됐다.

  세 명만 있으면 서열이 확실한데 내가 끼게 되면 애매한 상황이 돼버려서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술자리도 줄어들게 됐고 함께 만나서 편하게 마시고 싶은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철이 들어서일까? 누가 술을 더 많이 마시는지, 누가 끝까지 취하지 않는지 치기 어린 경쟁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술을 권하지도 않는다.

  스무  무렵, 술기운을 빌려 용기 없는  마음을 전했던 적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술을 마실  정신이  또렷해지고 누구를 만나든지 속마음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맥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맥주 특유의 알싸함이 목구멍으로 내려갈 때면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러웠던 스무 살 무렵의 어느 때로 돌아간 듯 느껴진다.

  맥주를 마시는 그 시간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라는 위치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그 속에서 특이한 해방감도 느낀다.

   아니, 그냥 아무 계산 없이 함께 술을 마시며 즐거워했던 스무살 초반의 그 시절 친구들이 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인정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