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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May 23. 2022

어떤 이별이든, 이별만은 미루고 싶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보내며 가슴 저렸던 기억들이 자꾸만 되살아난다

  지난 금요일, 남편 고향 친구 어머님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전해 듣고 아침 일찍 목포행 KTX에 몸을 실었다.

  익숙하지 않아 낯설기만 한 기차에 앉아 한숨 돌리는데 교회에서 문자가 왔다. 교인의 부고를 알리는 문자였다. 교회에서는 교인이 별세하면 부고 문자를 보내고 장례식장에 함께 가서 위로예배를 드리고 가족들을 위로한다.

  여느 때처럼 부고 문자를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고인은 향년 29세, 다 키운 자식을 먼저 앞세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한 번도 보지 못한 청년이지만 그간 몇 차례 급하게 수혈이 필요하다는 문자도 받았던 터라 더 마음이 아파온다.

  어떤 죽음인들 슬프지 않은 이별이 있으련만 목포 장례식을 내려가는 내내 가슴이 메어온다.




  나는   동안 교회에서 예배 안내 봉사를 하고 있다. 이번 주엔 코로나가 시작되고 한동안 보이지 않던 젊은 부부들이 예배에 참석했고 오래간만에 오신 어르신들도 많이 보인다.

  2년 동안 줌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용기 내어 현장예배에 와서 마스크 속에 가려져 있는 시간으로 인해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하는 내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한다.

  매주 교회에서 만나던 익숙한 일상이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었던 2년여 시간, 코로나를 잘 견디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음에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있는 공간이 한껏 들떠있다.




  설교 말씀 전 광고 시간, 일주일 전 29세의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낸 유족들과 교인들이 마주 서서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하며 위로를 전한다.

  기도를 마치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내내 교인들은 연신 눈물을 훔친다.

  삶과 죽음은 한낱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정해진 이치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또한 기독교인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이 세상에서는 먼저 떠나보내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으로 그 아픔을 견뎌낸다.

  그럼에도 삶에서 시시각각 닥쳐오는 만남의 이별과 생사의 이별이 주는 슬픔에서 쉬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먹먹한 아픔에 꺽꺽거리는 울음을 토해낸다.




  언젠가 또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이별인데, 얼굴도 보지 못한 누군가의 부고인데 이토록 가슴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그 순간마다 내 삶 속에 남아있는 가슴 아팠던 이별의 장면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보내며 가슴 저렸던 그날의 기억들이 자꾸만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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