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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Dec 15. 2022

자본주의에서 무료가 좋은 걸까?

배우려는 노력과 실행해 나가려는 열의를 잊지 않기를

  2019년 어느 겨울, 국내에도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학교와 학원들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했다.  

  그 후 곧 잡힐 것 같았던 코로나19의 양상은 점점 더 확산되고 사회적 거리 두기의 방침은 더 강력해졌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사람들과 단절되면서 나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소비자에서 생산자의 삶으로 살아보자는 뭔가 대단한 각오로 시작했지만 사실 세상과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이었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3년 동안 무수히 많은 무료 강의를 들었다. 

  임신과 출산 후에 육아 관련 무료 세미나에 참석해 본 적은 있었지만 정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몇 번 참석해 본 게 다였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홍보를 하기 위한 기획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고 기념품까지 안겨주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니 내가 찾고 있던 강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고 신청만 하면 들을 수 있는 무료 강의도 많았다. 

  위드 코로나로 전환된 올해부터는 대면 모임도 가능해지면서 대면 강의들도 재개했다. 

  기업들도 예산을 풀어 좋은 행사도 하고 무료 강의를 기획해 고객들을 모객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무료라는 게 과연 좋은 걸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당연한 진리를 간과하고 좋은 기회라는 생각으로 들었던 수많은 강의들.

  내가 들었던 강의 중에는 비싼 강의료를 지불했던 강의보다 훌륭한 무료 강의도 있었고 저렴한 강의료에 비해 가성비가 좋았던 강의도 있었다. 

  반면 무료 강의라는 이유로 슬쩍슬쩍 정보만 흘리고 결국 필요했던 정보는 내어주지 않은 채 돈을 내고 정규반에 들어오라는 말로 마무리하는 강의도 꽤 많았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낸 것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무료 강의라는 이유로 강의자에게 어떤 요구를 하거나 불만을 말할 수 없었다. 

  또 때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를 신청하고서 무료라는 생각 때문인지 흘려듣거나 신청해 놓고도 시간을 메모해 놓지 않아 참석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올 한 해 여러 경로를 통해 강의를 들으면서 적정한 수준의 강의료는 수강자와 강의자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적정한 수준의 강의료는 서로에게 적당한 긴장감을 갖게 해 준다. 강의자도 수강료에 걸맞은 강의를 준비할 것이고 수강자도 지불한 강의료만큼이라도 얻어 가려고 노력한다. 그런 자세는 배우려는 의지를 키우고 함께 있는 그룹 안에서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사실 제일 중요한 건, 강의료의 유무와 금액을 떠나서 좋은 강의를 선별해낼 수 있는 능력과 강의를 듣고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우리의 의지 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강의자가 열정을 다해 전달한다 해도 수강자에게 의욕과 열의가 없다면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

  반대로 수강자의 절실함에 못 미치는 내실 없는 강의라면 귀중한 시간을 내어버리는 꼴이 된다. 

  어떤 책에서든 한 가지 이상은 배울 점이 있으니 책을 읽고 실행해야 진정한 독서라고 한다. 

  우리의 유한한 시간 안에서 수강을 결정했다면 배우려는 노력과 실행해 나가려는 열의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설레는 마음으로 선택했던 수많은 결정들을 해나가는 모든 과정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성숙해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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