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또각거리는 구두가 좋아 보였다.
나도 또각거리는 구두를 신으면
엄마처럼 뭐든지 잘하게 될 것만 같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엄마는 맞벌이를 시작하셨다.
위로 언니들이 많았지만
제일 먼저 귀가하는 건 제일 어린 나였고
맞이해 주는 사람이 없는
집 안은 어둡고 캄캄했다.
경쾌하게 또각거리며 다가오는
엄마의 구두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어딘가에 내 외로움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로도 충분히 이쁜 대학생이 된 후에
나는 친구들과 다르게
또각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세미 정장에 높은 구두를 신었다.
구두를 신고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내 안에서 자신감이 생겼다.
나의 또각거리는 구두가
새침하게 느껴졌는지,
까탈스럽게 느껴졌는지
사람들이 쉽게 다가서지 못했는데
자연스레 생기는
그들과의 적당한 거리감이 나는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제멋대로 헤집고 들어와서
상처 주는 사람들을 막는
나만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흔이 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더 이상 또각구두를 신지 않는다.
또각거리는 구두를 신지 않아도
그들에게서 나를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단단해졌고
그들의 무례함에 신경 쓰지 않는
무던함도 생겼다.
나와 다른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포용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서 나를 보호해 주던 또각구두를
신발장에 넣어두고
편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