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고 말 것 같은 하루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책을 읽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책 속의 인물이 나와 닮아서
그런 결말이 나에게도 닥칠 것 같아 두렵다.
때로는 책 속의 인물이 나 같지 않아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닿을 수 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아서 좌절한다.
그런 날은 읽으려고 꽂아둔 책들을
애써 외면하며 하릴없이 하루를 보낸다.
하루의 기억을 사그리 잊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하루쯤은 우울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생각할수록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올가미 같은 존재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망각의 세계에 하루의 기억을 묻어두고
단지 내일이 오기를 바라며
잠자리에 든다.
글을 쓰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뱉은 낱말들이 무의미하게 흩어지고
내가 삼킨 낱말들이 가슴까지 차올라
글로도 풀어놓을 수 없고.
글 쓰는 게 부질없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글을 써도 치유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가득한 밤,
그런 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그러나 이런 모습의 나여도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다시 책을 집어 들게 하고
하루의 기억을 단정히 정리하게 하고
더듬더듬 낱말들을 찾아 글을 쓰게 한다.
포기하고 말 것 같은 하루를
포기하지 않게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