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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Feb 13. 2022

지하철 승강장에서 친구를 만났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다시 만나고 싶다

  십 년 전 돌이 안 된 둘째 아이를 아기띠로 안고 3살 된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 나는 지하철로 향했다.

   나의 목적지는 청량리에 있는 작은 내과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돌이 되기 전까지 맞혀야 하는 예방접종은 주기도 짧았고 제법 많았다.

  국가에서 지원해서 무료로 맞을 수 있는 필수예방접종도 많았지만 선택예방접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로타바이러스 예방접종인 로타텍의 경우는 2번에서 3번을 맞혀야 하는데 한 번 맞힐 때마다 8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로타바이러스는 감염성 설사 질환으로 구토, 발열, 탈수, 설사를 동반하는데 영유아의 탈수가 심해지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해서 제법 비싼 가격이었지만 엄마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예방접종이었다.

  그맘때 맘 카페에서는 선택예방접종을 저렴하게 맞힐 수 있는 병원들의 목록이 공유되곤 했는데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곳은 청량리였다.




  청량리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2호선을 타고 가다가 왕십리역에서 경의선으로 한번 갈아타야 했다.

  경의선 승강장에서 청량리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처럼 아기띠를 매고 열차를 기다리는 엄마를 보았다.

  그 엄마는 나보다 어린 것 같았지만 아기띠에 안겨있는 아이는 비슷해 보였고 그 엄마가 먼저 혹시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가느냐며 말을 건네주면서 예방 접종을 하는 병원까지 같이 가게 됐다.




  그날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비슷한 개월 수의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기 때문에 나눌 대화가 많았다. 그 아이도 돌전 선택예방접종을 맞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고 큰 아이도 우리 집 첫째 아이와 같은 나이였다.

  그 뒤로 수시로 연락을 하게 됐고 어느 날 친하게 지내는 같은 동네 엄마들도 같이 만나게 되면서 엄마 4명과 아이들 9명은 수시로 만나게 됐다.  

  그렇게 만난 우리 네 명은 사는 구도 달랐고 나이도 달랐지만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들의 나이가 같아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같이 만나며 커가는 모습을 봐왔다.




  그 뒤로 유용한 정보가 있으면 서로에게 공유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같이 화를 내주고 기분이 풀릴 때까지 넋두리를 하기도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아이들을 데리고 올림픽공원을 가기도 했고 더운 여름에는 수영장, 좀 더 크고 나서는 박물관이나 체험관도 예약해서 함께 다녔다.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에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1박 2일 휴양림으로 놀러 다니기도 했다.

  때로는 아빠들의 시간도 맞춰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의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지내온 시간이 10년인데, 코로나로 인해 만나지 못한 게 1년이 넘었다.

  우리는 여전히 단체 카톡 안에서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걱정해 주고 서로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어느새 성장해서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코로나로 정신없이 보내온 2년이라는 시간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상황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용기를 내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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