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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Feb 22. 2022

결혼 전까지 버리지 못했던 선물

너로 인해 나도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됐어...


  나는 감정 표현에 서투른 걸까? 그냥 차가운 사람인 걸까? 지금껏 특별히 좋아했던 것도 없고 푹 빠져들었던 취미도 없다.   

  어릴 때도 좋아했던 가수와 노래들은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냥 좋구나, 괜찮구나 그런 정도였고 연예인을 열정을 다해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의 책받침도 사고, 테이프도 사고, 편지도 쓰던데 만날 수도 없고 손길조차 닿을 수 없는 연예인에 대한 친구들의 무한한 열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거나 힘든 일이 생겨도 그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지 않았고 나름대로는 침착하게 진행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편이다.

  사회 초년생 때 한참 다단계 사업들이 유행했는데 내가 관심이 없는 건 누군가 옆에서 아무리 설득을 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처음 경험한 일들이 참 많았지만 사소한 일에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런 나의 무덤덤한 성격 때문인지 지금까지 꽤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는 선물은 그리 많지 않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을까? 친한 동성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이성 친구가 있었다.

  그때 당시 나는 조용했던 편이었고 이성친구에 대한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나를 좋아한다며 연락을 하던 그 친구의 마음을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순수하게 다가오던 그 친구가 싫었던 것도 아니었고 단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았기에 그냥 친구도 아닌, 남자 친구도 아닌 그런 애매한 상태로   동안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친구가 군대에 입대하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던 걸로 기억된다.




  그 친구가 언젠가 내 생일날 줬던 선물이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선물이 이성친구에게 받은 첫 선물이기도 했지만 정성이 담겨 있는 선물이었기에 결혼 전까지 차마 버리지 못했다.

  그 친구는 작은 종이로 접은 거북이 천 마리를 투명한 유리병에 담아 내게 선물해 주었다.

  누군가를 위해 종이학 한 마리조차 접어본 적이 없던 나는 그 선물을 받고 고마움의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받은 그대로 고스란히 책장 위에 올려놓았다.

  몇 달 뒤인가 그 친구는 내가 유리병을 열어 봤는지 물어왔다. 종이 거북이 천 마리 안에 무언가를 넣어놨으니 유리병을 쏟아보라고 했다.

  몇 달 만에 열어 봤던 유리병 안에는 무당벌레 모양의 목걸이, 뚜껑 안에 향수병이 들어있는 좀 특이한 만년필 한 자루와 편지가 들어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시간이 참 많이 지났지만, 이젠 빛바래진 희미한 추억이지만 어린 시절 그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해서 미안하다고, 한없이 차갑고 냉정했던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웠다고, 내 모습 그대로 순수하게 좋아해 줬던 너로 인해 나도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고…  친구야. 잘 지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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