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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Feb 25. 2022

엄마의 강박증

식사 시간만 되면 찾아오는 말도 안 되는 강박증


  남편이 며칠 전 치아가 불편하다며 치과 진료를 갔다가 충치가 생긴 어금니에 신경치료를 시작했다. 그런데 충치가 있는 어금니에 금이 생긴 상태여서 언젠가는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겠지만 자기 치아를 쓸 수 있을 때까지 발치를 하지 않고 최대한 사용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을 들었다고 한다.

  남편은 이럴 경우 차라리 지금 발치를 한 후 임플란트를 하는 게 치료 과정도 줄어들고 진료비도 적게 드는 게 아닐까 의아해했다.

  그 치과는 큰 아이가 7살 때부터 6개월의 한 번씩 아이들의 정기검진과 진료를 받고 있는 곳인데 의사선생님도 부담스럽지 않게 친절하고 무턱대고 과잉진료를 하지 않아 내가 나름 신뢰하고 있는 병원이다.

  남편은 두 번째 신경치료를 위해 치과를 재방문할 때 내가 동행해서 다시 한번 물어봐 주기를 원했다.




  그날이 오늘이었다. 때마침 아이들의 치과 정기검진 시기도 다가왔고 나도 이참에 바쁘다는 핑계로 자꾸만 미뤄둔 스케일링을 받으면 좋을 것 같아 네 식구가 함께 치과 오픈 시간에 맞춰서 방문했다.

  오래간만에 함께 외출하는 거라 치과 진료를 마친 후 밖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치과 오픈 시간인 10시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으나 미리 예약이 된 손님도 있었고 가족 4명이 순서대로 검진을 받고 나니 12시가 훌쩍 지나버렸다.

  내 계획대로라면 치과 진료를 마친 후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고 1시에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는 것이었는데 이러다가는 점심을 먹이지 못하고 보내야 할 것 같아 조바심이 생겼다.

  나는 사실 한 끼 정도 굶거나 안 먹어도 상관없었고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큰 아이도 학교에 늦을 바에는 먹지 않고 가겠다고 했지만 도저히 내가 그럴 수가 없었다.  




  엄마가 되면서 어느 순간 강박증이 생겼다.

시어머님이 음식과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편이라 아이들이 크는 내내 너무 안 먹어서, 너무 안 먹여서 말랐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지금  아이는  158cm 몸무게 40kg, 둘째 아이는  138cm 몸무게 30kg표준 몸무게에 비하면 많이 마르긴 했다.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남편도 결혼 전에 키 182cm에 몸무게가 67kg인 마른 체형이었지만 시어머님은 아들의 결혼 전 모습은 전혀 생각나지 않으시는 것 같다.  

  너희들이 엄마인 나를 닮았으면 그렇게 날씬하지 않았을 테고 나도 13년 동안 시어머님의 걱정을 듣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엄마인 내가 굳이 변명을 하자면 큰 아이는 입도 짧고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인데 한 곳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고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서 활동량이 적다.

  둘째 아이는 먹는 걸 좋아하지만 조금씩 자주 먹고 운동선수를 꿈꾸며 날마다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  활동량이 많다.

  나이가 들고 기초대사량이 떨어져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것 같은 엄마와 살을 찌우려고 해도 살이 찌지 않는 아이들 사이에서 식사 시간만 되면 찾아오는 말도 안 되는 이노무 강박증은 언제쯤 고쳐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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