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내게 남은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적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신기한 일이다. 마흔 중반을 넘어섰지만 지금까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게, 이제 어느 모임에 가든 내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한다는 게 그리 불편하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내 머리카락 중에 제법 많은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새치가 좀 더 많아졌다고 생각하며 넘겼고 예전보다 많이 빠진 머리카락이 방안을 헤집고 다녀도 요즘 스트레스가 심한가 보다 생각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체형이 왠지 모르게 달라졌지만 코로나로 인해 주기적으로 하던 운동도 그만두고 외부 활동도 줄어들었는데 주책없이 먹는 양만 늘어서 살이 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저녁 들여다보는 내 얼굴에 선명해지기 시작한 주름들까지도 당연스럽게 받아 들었는데…
그런데 신기하다. 몇 달 전부터 눈이 흐릿해지고 글씨를 가까이 보면 초점이 안 맞고 멀리 봐야 글씨가 보인다.
결혼 전에 했던 라섹수술의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한 건지 이제는 책을 읽는 것도 수월하지 않다.
아뿔싸. 노안인가?
코로나 이후로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SNS 세상에 빠져들면서 2년 전보다 스마트 기기 사용 시간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에 시력 (視力)이 나빠진 것 같다고 끝까지 우기고 싶지만, 노안(老眼)이다.
물체의 존재나 형상을 인식하는 눈의 능력이 나빠진 게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며 눈의 남은 수명도 점차 짧아지고 있음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몇 달 전부터 접었다 폈다 할 때마다 오른쪽 팔꿈치 안쪽이 아프다.
며칠 참다가 정형외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은 약간은 귀찮은 말투로 테니스 엘보 증상이니 지켜보고 좀 더 심해지면 주사를 맞자고 한다.
하던 운동을 멈춘 지도 2년이나 지났고 기껏해야 숨쉬기 운동이나 걷기만 하는데 생뚱맞게 테니스 엘보라니…
오른쪽 팔꿈치가 쉬 낫지 않고 며칠 통증이 없어 나은 것 같다가 또 며칠 뒤에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온다.
답답한 마음에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보니 손목을 많이 쓰는 주부에게 자주 나타나는데 중년 여성은 팔과 손의 근력이 남자보다 약해 무리한 가사노동으로 팔꿈치 주위 근육과 힘줄이 손상될 수 있다고 한다.
테니스 엘보 원인에 대해 읽다가 중년 여성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에 훅 들어온다.
아. 2년 동안 가사노동을 좀 많이 하고 있긴 하지.
살아온 시간만큼 내게 주어진 신체의 수명도 줄어든다. 눈이 늙어가고 팔과 손의 근력이 약해지는 중년의 나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나이 듦이 불편해지고 괜스레 억울해진다.
내 마음속에서는 앞으로 찾아올 기회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아직 해낼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게 남은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적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 신체적으로 약해지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 대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더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 차리고 보니 특별히 해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들었다고 억울해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내가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을 찾아 나설 것인가?